마이클 베이가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을 세 가지 버전으로 찍었다? 놀라지 말자. 사정은 이렇다. 영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을 각기 다른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본 세 친구가 만나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첫 번째 친구. “영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화면 전체가 흐릿하더라. 일부러 그렇게 했나봐. 대신 자막은 뚜렷하던데?” 두 번째 친구. “응? 선명하기만 하던데. 근데 확실히 전편보다 분위기는 어둡더라.” 세 번째 친구. “뭐? 오히려 너무 밝지 않나. 대신 화면이 좁아서 답답했어.”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마이클 베이가 세 가지 버전으로 찍어 프린트를 보낸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그것은 아직까지 상영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영표준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내 극장에서 2.35:1 비율의 시네마스코프로 제작된 영화들이 화면 좌우가 잘린 채로 상영된 것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의 한국군과 북한군이 설원 양쪽에 대치한 장면에서 화면 좌우의 인물들은 온데간데없이 배경만 보였던 일화는 꽤 유명하다. 그때마다 영화인들은 “상영표준화가 시급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상영표준화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극장마다 환경이 달라 상영표준기준을 적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 극장표준화 사업팀의 장광수 팀장은 “단관 시절에는 넓은 상영관 안에 스크린, 영사실, 좌석만 넣으면 됐다. 화면이 당연히 컸고, (비스타비전이나 시네마스코프로) 상영하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 렌즈만 바꾸면 되니까. 멀티플렉스 극장의 경우엔 한정된 공간 안에 최대한 많은 상영관과 좌석을 넣었다. 상영관마다 크기, 좌석 수는 물론이고 영사기와 스피커의 종류, 극장 운영방식 등이 달라 하나의 기준을 적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가령 제대로 된 화면을 감상하기 위해서 영사각도가 10도 미만이어야 한다. 현실은 건물과 상영관마다 영사실의 높이, 영사실과 스크린 사이의 거리가 제각각이다 보니 영사각도가 10도 이상인 곳이 허다하다. 이로 인해 화면에 포커스가 나가 선명도가 떨어지고, 색이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스크린 크기가 작아지면서 2.35:1 비율로 제작된 영화가 화면 좌우가 벌어진 시네마스코프가 아닌 위아래가 좁아진 채로 상영되어 답답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장광수 팀장은 “무엇보다 극장이 창작자의 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2000여관 데이터값을 모두 다르게 지정?
그러다보니 창작자의 상영환경에 대한 불만은 끊이질 않는다. 한 촬영감독은 “비율도 비율이지만 요즘은 디지털 색보정(DI)도 많이 하지 않나. 화면 밝기, 색감 등 화면의 모든 부분에 색 데이터 값을 지정한다. 문제는 후반작업에서 정한 값을 극장에 오면 또 다른 값으로 다시 지정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후반작업 할 때와) 그림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관만이라면 상관없지만 극장에 있는 10개관 모두 점검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2천여개의 극장이 있지 않나. 그걸 어떻게 일일이 다 맞추나. 개봉할 때마다 극장에 문제제기를 하지만 그때마다 극장은 나 몰라라 한다”며 한숨을 내쉰다.
외화도 자막이 문제다. 장광수 팀장은 “현재 한국의 극장에서 상영되는 외화는 포커스가 자막에 맞춰졌다. 한국 관객은 영상보다 자막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결국 전체적으로 포커스가 나간 채로 상영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극장은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CJ CGV의 이상규 홍보팀장은 “건물구조부터 제각기 달라서 현실적으로 상영표준화를 하기란 불가능하다”면서 “정확하게 표현하면 ‘상영시스템의 최적화’가 맞다. 작품과 상영 환경 사이의 오차를 최대한 줄인 것이 레퍼런스 극장”이라고 말한다. 그는 “영사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철저한 사전교육과 영사환경의 꾸준한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며 각 극장 영사기사의 역할을 강조한다. 극장의 좀더 적극적인 투자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전 CGV용산 영사실장이었던 김세득 한국영사예술인협회 부회장은 “단관과 달리 멀티플렉스 극장은 5개관, 10개관씩 들어서다보니 극장 운영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에 따라 돈을 절약할 수 있는 부분은 다 절약하는데, 그중에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기술부분이 그 대상”이라고 밝힌다. 그는 “영사기 램프의 수명이 1천 시간이다. 1천 시간이 지나면 빛이 약해져 스크린에 색이 변한 채로 투영된다. 새 걸로 갈아줘야 하는데, 비용을 아끼다보니 수명시간이 지나도 계속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 CJ CGV와 롯데시네마가 추진 중인 디시네마 사업 역시 극장의 상영표준화에 대한 노력 없이는 의미가 없다. 김세득 전 CGV용산 영사실장은 “상영시스템이 디지털로 바뀌면 줌렌즈를 사용해 상영포맷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다. 하지만 색 데이터 값을 입력하는 건 지금과 마찬가지라 극장은 영사설비는 물론이고, 상영표준화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에 반해 극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 극장관계자는 “체인망의 전체 극장을 총괄하는 기술 기준은 따로 없다. 극장마다 기술을 점검하고, 최상의 화면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역할은 그 극장의 영사기사를 비롯한 영사기술팀의 역할이자 책임”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기술에 문제가 있다면 왜 극장에 (개선을) 요구하지 않나”라고 말한다.
‘디시네마 사업’을 위해서도 절실한 일
이처럼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사이에 피해를 보는 건 관객이다. 동시에 상영표준화에 대한 해결의 열쇠를 쥔 것도 관객이다. 정작 관객은 상영환경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문제다. 지난 6월22일 낮 12시 명동 롯데시네마. 남편은 직장에, 아이는 학교에 보내놓고 극장을 찾은 50대 중반의 한 관객은 “그냥 줄거리만 보는 거지. 이야기만 재미있으면 되잖아. 그게 (상영환경) 중요한가”라고 말한다. 영화를 한번밖에 안 봐서 뭐가 문제인지 몰라 생기는 반응이다. 이는 “관객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뭐 하러 (상영표준화를) 해?”라는 극장의 반응으로 이어진다. 악순환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영진위의 장광수 팀장은 “극장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관객의 (상영표준화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필요하다”고 한다.
당장 극장쪽에서의 변화를 기대하기란 현실적으로 무리다. 다만 언제까지나 관객의 입장에서 제2, 제3의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을 관람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상영표준화에 대한 요구는 유별난 게 아니라 당연한 요구다. 최적의 환경에서 창작자가 의도한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는 것은 영화관람료에 포함된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라는 말이다. 관객은 팝콘의 맛, 극장 주변의 맛집, 주차시설 등에는 신경 쓰면서 왜 영사의 질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