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 2008 수상작>
2008년 감독 박지연, 박정범, 정지연, 김선, 김곡, 정지숙, 변병준 화면 포맷 1.85:1 아나모픽 & 비아나모픽, 1.33:1 스탠더드 음성포맷 DD 2.0 한국어 자막 한글, 영어 출시사 서울독립영화제
화질 ★★★ 음질 ★★★ 부록 ★★★
‘밤이 깊으니 새벽이 멀지 않다’는 믿음으로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힘겹게 찾아온 새벽은 언제나 짧은 시간 동안 우리 곁에 머물다 사라진다. 우리는 아침을 풍성하게 가꾸지 못했고, 따뜻한 오후를 붙잡지 못했다. 2009년의 대한민국은 다시 밤이고 겨울이다. 꿈과 현실 사이에 자리한 영화는 그러한 현실을 반영해야 마땅하나, 안타깝게도 작금의 상업영화는 거짓 환상을 좇기에 급급하다.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한국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단편영화들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 영화 중 대부분은 영화제 등을 통해 일반 관객과 만나지 못할 운명이지만, 그들에게 하나같은 면모가 있다면 그건 현실의 인장이 깊숙이 박혀 있다는 점이다. 영화 속의 젊은이들은 분노하고, 힘들어하고, 안타깝게도 생명선을 끊으려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다수가 소외받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겨울은 한여름에도 맹위를 떨치며,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다. 그런 겨울 한가운데에서 열린 ‘서울독립영화제 2008’의 모토는 ‘상상의 휘모리’였으나, 정작 영화들은 상상의 힘으로 자유롭다기보다 냉기로 인해 꽁꽁 얼어붙었다는 느낌을 준다(이건 비판이 아니라 걱정이다). 수상작 DVD에 포함된 여섯편의 작품들은 모두 겨울을 살고 있다.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박지연, 13분)은 모딜리아니의 유화와 팝애니메이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선 작품이며, 그 ‘균형’은 영화의 스타일을 넘어 주제를 완성하기도 한다. 철거되다 마는 바람에 공중에 떠 있는 집은 여주인공의 불안한 심리에 다름 아니다. 흔들리는 채 정착하지 못하는 존재, 외부의 소음과 충격을 안으로 소화할 수밖에 없는 존재, 사랑을 식욕으로 채우는 비겁한 존재인 도시인에게 땅 위의 균형잡힌 삶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125 전승철>(박정범, 20분)은 탈북 청년의 애달픈 삶을 다룬다. 임대아파트에서 하루하루를 꾸려나가는 남자에게 담당 형사는 ‘살아남는 것’에 대해 설교하는데, 사회의 냉대를 접하다 의지를 잃은 그는 거리에서 주워온 옷장을 관으로 사용하고야 만다. 그에겐 행복을 꿈꾸는 것조차 사치처럼 보인다. 두 여고생이 등장하는 <봄에 피어나다>(정지연, 20분)는 문제적 작품이다. 예민한 시기를 통과하는 두 소녀가 주변과 충돌하는 지점을 응시하는 영화는 무딘 영혼들을 깨어나게 할 쓰디쓴 독을 품는다. 김선, 김곡의 <자가당착>(30분)은 그들의 세계가 여전히 날카로운 활력으로 중무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못된 인형극과 이미지들의 몽타주와 거친 실사영화를 실험적으로 조합한 영화는 아는 것을 그대로 말하고 표현하기에 두려움이 없다. 그들은 누군가는 나쁘고,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썩었다고 명확하게 말한다. <포크레인 코끼리>(정지숙, 8분)는 평화로운 자연이 파괴되는 걸 슬퍼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려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이채로운 소품이다. <피쉬>(변병준, 29분)는 낚시터에서 발견된 여자의 시체와 PC방에서 일하는 여자를 교차편집한 다음 마지막 순간에 비극의 실체를 드러낸다. PC방에서 물고기처럼 지내다 결국 물고기로 버려진 여자를 빌려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부여된 싸늘한 온도를 피부로 느끼도록 만드는데, 서늘한 기운이 대단하다.
<서울독립영화제 수상작> DVD는 특유의 아기자기한 부록들이 보는 재미를 더하도록 구성되곤 한다. 이번에도 감독별로 직접 차려놓은 인사말, 인터뷰, 메이킹필름(46분)과 영화제 개·폐막 영상, 홍보 영상(18분), 소박한 안내책자를 부록으로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