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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요리] 달콤 치명적인 초콜릿의 유혹
박찬일 2009-07-08

어린 시절, 소풍의 기억은 없는데 전야의 두근거림만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미리 꾸려둔 소풍 가방을 열면 풍겨오는 냄새, 그것은 밀크 초콜릿의 달콤 쌉싸름한 유혹이었다. 은박지를 벗기고 그 달착지근한 검정색 블록이 치아 사이에 물리면 나는 거의 정신이 혼곤해졌다. <초콜렛>은 서양 사람들에게는 나의 소풍 전야 기억 같은 영화일 것이다. 카카오 함량 낮은 싸구려 초콜릿을 추억하는 우리처럼 말이다. 채시라가 그 시절의 아이돌이었으니 나는 도저히 <천추태후>의 그녀와 가나초콜릿 광고 속의 그녀를 일치시킬 방법이 없다.

영화 <초콜렛>은 기시감을 던져준다. 요리영화의 고전에 오른 <바베트의 만찬>과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를 섞어놓은 것 같다. 줄리엣 비노쉬가 보수적인 마을 사람들에게 초콜릿을 주어 인간의 감정을 되살려놓는다는 설정은 바베트가 멋진 만찬으로 덴마크 바닷가 마을사람들에게 사랑과 연대의 기억을 돌려주는 것과 흡사하다. 게다가 두 영화의 마을사람들은 청교도처럼 묘사된다. <피아노>의 홀리 헌터 모녀의 등장과 비노쉬 모녀가 물처럼 마을에 스며드는 정황도 묘한 일치감을 던져준다.

초콜릿은 인간의 마음을 뒤집어놓을 만큼 마력이 있다. 사랑스럽고, 달콤하며, 매혹적인 초콜릿의 캐릭터는 사실, 진짜 역사 속에서는 짙은 핏빛 배역으로 등장했지만 말이다. 점령자의 손에 의해 마야의 땅 유카탄 반도에서 스페인으로, 다시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면서 초콜릿은 손에 피를 묻혀야 했다. 아프리카는 새로운 카카오 재배지로 침탈됐고, 노예무역의 역사는 초콜릿과 설탕의 역사였지 않은가.

마술적으로 영화에서 묘사된 초콜릿의 효능은 고농도의 카카오에서 일어나는 다분히 실제적인 작용이다. 진정과 흥분 작용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그렇지만 초콜릿은 근대의 동아프리카와 카리브해의 우울한 역사처럼 설탕을 만나 비로소 완벽한 악마적 물질로 변한다. 그러나 달콤하고 맛있는 초콜릿은 종종 치명적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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