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에 엽총으로 자살한 커트 코베인의 죽음이 더 충격적일까. 51살에 심장마비로 죽은 마이클 잭슨의 죽음이 더 충격적일까. 하는 초딩스러운 궁금증이 머릿속에 떠돌아다닌다. 물론 모든 죽음은 비극적이고 누구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없는 각자만의 고통스러운 사연이 있다는 거 안다. 그래도 궁금하다.
마이클 잭슨의 사망 소식을 듣고 경악이라고 할 만큼 놀라지는 않았다. 불과 한달여 전쯤 너무 센 충격을 받아서 역치가 높아진 걸까. 그건 아닌 거 같다. 어찌 보면 오래전부터 그에게 무의식적으로 사망선고를 내렸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갈수록 기괴해지는 얼굴과 끊임없이 쫓아다니던 추문들. 짱둥한 바지를 입은 누군가를 촌스럽다고 놀릴 때 “마이클 잭슨이냐”라는 식으로 소비하던 수준의 존재감이었을까.
물론 그는 위대하다. 이미 젊은 나이에 설명이 필요없는 전설이 됐다. 커트 코베인과 마이클 잭슨의 결정적인 차이라면 커트 코베인은 전설의 ‘전’ 정도가 쓰여졌을 때 죽어버려 전설을 완성했다. 반면 마이클 잭슨은 전설로 등극한 다음에 아저씨가 됐다. 장르와 하위문화의 행태는 다르지만 어쨌든 젊은 혈기들을 미치게 했다는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의 다른 행로.
죽는 것도 불행하지만 하늘에서 빛나던 별이 땅으로 내려오는 것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요즘의 아저씨돌 유행에는 성대현 등 돌아온 아이돌의 개그맨화가 큰 몫 하긴 했지만, 뭐 그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조용필이나 서태지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와서 김구라와 말씨름을 하고 주책떨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건 보고 싶지 않다.
결국 아저씨가 된 슈퍼스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말 그대로 ‘네버랜드’에 유폐돼어 수많은 사람들이 훔쳐보고 꼬투리잡고 지어내는 이야기들을 견디어내는 것일 뿐이다. 전설과 함께 사라진 커트 코베인의 경우 생전에 각종 매체 인터뷰에는 자기 음악이 방송을 타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매니저에게는 왜 이렇게 방송이 뜸한거냐 족쳤던 행태조차 방황하는 청춘의 분열증 정도로 너그럽게 해석된다. 당연한 일이다. 그는 여전히 찬란하게 빛나는 별이니까. 하지만 아저씨 마이클 잭슨의 네버랜드는 주책이고,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노래는 느끼한 과대망상이며 변하는 얼굴은 성형중독으로 오인됐다. 하이에나식 보도도 문제지만 시간 앞에서 쇠락하는 스타에게 소문과 추문은 어쩔 수 없는 비극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이클 잭슨이 죽은 다음 가장 슬프게 느껴지는 건 50살이라는 그의 나이다. 차라리 컴백을 준비하지 말고 폴 매카트니처럼 샐러리맨 24시보다 더 지루한 교향곡을 쓰면서 살아남았다면 좋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LP로 들었던 <벤>부터 90년대 <블랙 오어 화이트>까지 참 오랫동안 그의 음악을 들었다. 진짜 네버랜드로 돌아가 20대 청춘으로 영원히 살아가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