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역관 김홍륙이 고종이 즐겨 마시던 커피에 독약을 타넣은 독살음모가 있었다. ‘러시아 커피’를 개화기식으로 표기한 <노서아 가비>는 이 일화에서 탄생한 팩션이다. 주인공 ‘따냐’는 역관의 딸로 태어났으나, 조선을 떠나 청나라와 러시아를 떠돌아야 했던 여인이다. 러시아에서 광활한 숲과 바다를 귀족들에게 팔아치우는 대담한 사기극을 벌이던 따냐는, 조선 태생의 또 다른 사기꾼 ‘이반’을 만나 사랑하고, 역관이 된 그와 조선에 돌아오고, 그 뒤 고종의 새벽 커피를 담당하는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가 된다.
<노서아 가비>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건 불필요하다. 역사적 사건이 어떻게 변주되었는지보다 따냐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따냐에게 속아넘어간 사람들이 그랬듯, 독자는 따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 책장을 넘기면 된다. 그만큼 살기 위해 남을 속이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사랑하는 이에게 아흔아홉을 주더라도 마지막 하나는 자신을 위해 남겼던 이 여자는 소설의 생명이자 힘이다. 박진감 넘치는 무용담과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의문 등 잘 짜인 이야기 사이로 슬쩍 비치는 고종과 따냐의 로맨틱한 지란지교도 <노서아 가비>의 숨은 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