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질과 능력을 떠나서 공적 집단이나 지위에 있는 이들이 가져야 할 절대적인 매너라는 게 있다. 이를테면 사회적 약자를 무시해서는 안되며, 계층·계급적 위화감을 조장해서는 안된다. 역대 정부가 중산층, 서민 운운한 것도 그런 제스처다. 부자와 1등을 위해 너희는 희생해야 한다고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속마음은 어떨지라도 성공, 꿈, 희망, 선진화, 이런 유의 추상적인 단어로 포장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광고 문구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고교 졸업생 84%가 대학에 진학하는 고학력 사회이므로 ‘버젓한 일자리’가 필요하다”며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럼 ‘버젓하지 않은 일자리’는 누가 맡나.
대통령의 이문시장 방문기를 보니, 상투적인 클리셰조차 무시한 그의 태도는 무지하다 못해 해맑게까지 보였다. 장사가 안돼 죽을 맛이라는 빵집 주인의 하소연에 “방학이라 학생들이 안 와서 그러냐” 반문하고, 코앞에 들어선 대형 마트의 가격 경쟁력을 못 당하겠다는 호소에 “떼다 팔지 말고 산지(인터넷) 직거래를 하라”고 충고한다. 대형 마트 개장이나 영업 시간만이라도 규제해달라는 총체적인 아우성에 “헌법소원 제기하면 정부가 못 이긴다, 그래도 요즘에는 (대통령에게) 이런 말도 하고 살지 않냐” 자화자찬한다. 아무리 형식적인 쇼라도 한마디 한마디에 아무런 진심도 걱정도 고민도 없다. 어지간하면 상인연합회 간부쯤으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다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앉아 있었을까. 그의 생각은 그의 말처럼 한마디로 “큰 회사가 대형 마트 연다는 건데” 왜들 이래, 다. 대형 마트에 비정규직으로 들어가면 되지. 경쟁력 길러서 평생 평생 이 마트 저 마트 전전하면 되잖아….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비정규직 관련법이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정규직 전환을 촉진해야 할 공공기관과 공기업이 앞장서 비정규직을 해고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해고 대란을 막고자 사용 제한 기간을 연장해야 한단다. 대통령은 한술 더 뜬다. “충분히 논의할 시간을 연장해놓고(그 동안은 뭐했니?) 여야 의원들이 정말 근로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간 연장질’을) 또 하면 된다”신다. 그 사랑, 참으로 버젓하게 뻔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