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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촉구] 9. 이구치 나미의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
정재혁 2009-07-09

생생한 생활감이 돋보이는…

배우들이 영화를 움직인다. 최근 일본의 인디영화 이야기다. 이누도 잇신의 <황색눈물>, 미키 사토시의 <텐텐>, 다카다 유이의 <백만엔과 고충녀>, 요코하마 사토코의 <울트라미라클 러브스토리>는 사실 아라시의 영화거나, 오다기리 조의 코미디, 아오이 유우의 사진극이거나 마쓰야마 겐이치의 무대로 보는 게 더 적합하다. 감독의 성향이 전무한 건 아니지만 최근의 일본 인디영화들은 배우의 힘을 빌려, 그 이미지를 활용해 완성되는 느낌이 크다. 제작의 용이함을 위해서도 이들 영화는 배우 위주로 기획이 이뤄지며, 신인감독들은 오다기리 조의 손을 잡고, 아오이 유우의 이미지를 타고 첫 장편을 찍는다. 오구리 슌, 마쓰야마 겐이치, 마쓰다 류헤이 등 최근 연기의 폭을 넓히며 주목받는 젊은 배우들이 많이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여기 여성감독의 선전이 더해진다. 일본의 젊은 여성감독들은 배우들의 감정 폭, 동작의 기운을 최대한 살려 잔잔하고 섬세한 ‘배우극’을 완성한다. 물론 감독의 성향, 스타일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쿠란>의 니나가와 미와 이후 대두되는 여성감독들은 모두 이 카테고리 안에 무리없이 묶인다.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 역시 같은 유의 영화다. 야마자키 나오코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주인공 유리 역을 맡은 배우 나가사쿠 히로미에 상당 부분 기대고 간다. 20살이나 어린 대학생과 연애를 하는 39살의 여자 유리는 동안이지만 마성을 지닌 나가사쿠의 얼굴에 거의 밀착해 움직인다. 이는 유리와 사랑에 빠지는 대학생 미루메 역의 마쓰야마 겐이치, 미루메를 혼자 좋아하는 엔짱 역의 아오이 유우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로 인물들의 행동을 지그시 응시한다. 프레임 속에 배우들이 들어오고 빠지면서 만들어내는 분위기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영화는 롱테이크, 풀숏 위주로 찍혔으며, 여기서 배우들은 그저 화면 안에 사는 자연인이 된다. 이구치 감독은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에 매우 심사숙고한 듯 보인다. 공간의 밀도가 미묘하게 달라지며 인물들의 갈등, 감정의 기폭이 드러난다. 이구치 감독이 90분이라 예상했던 영화가 두 시간 넘는 러닝타임으로 완성된 것도 다 이 과정 때문일 거다. 다수의 일본 인디영화가 밋밋한 이야기 속에서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끝나버린 것을 생각한다면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의 생생한 생활감은 주목할 만한 성취다.

이구치 나미 감독은 2008년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은 여성감독이다.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는 8년 전 그녀의 데뷔작 <개, 고양이>의 생동감을 그대로 유지하며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쌓아나간다. 나가사쿠 히로미와 마쓰야마 겐이치의 호흡은 기대 이상으로 완벽하며 아오이 유우는 그저 살아 움직인다. 새로운 재능의 탄생이라기보다는 최근 일본 인디영화의 흐름이 뿜어낼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을 보는 기분이다.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는 최소한 일본 배우들의 장기를 확연히 보여준다.

TIP/ 마쓰야마 겐이치를 <데스노트> 시리즈로만 기억하는 건 너무 실례다. 게다가 아오이 유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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