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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공동묘지의 노바디
이다혜 2009-07-02

<그레이브야드 북> 닐 게이먼 지음, 데이브 매킨 그림, 노블마인 펴냄

방학 맞은 청소년을 위한 선물 지수 ★★★★☆ 주변 인물들이 매력적이다 지수 ★★★★☆

닐 게이먼의 이름만 보고 책장을 펴고 읽기 시작하다가, 그림이 많다는 데 당황했고 그리움을 자극하는 착한 말투에 또 한번 당황했다. 표지를 다시 보니 ‘2009 뉴베리상 수상작’. 뉴베리상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잘 알려진 아동문학상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 의해 공동묘지에서 키워진 한 소년의 모험과 성장을 그린 판타지 소설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좋아했던 청소년 독자와 성인 독자의 관심을 끌 법한 책이다.

어느 날 밤, 잭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일가족 살해에 나선다. 두 부부와 여자아이를 해치운 뒤 그는 마지막 남은 사내아기를 찾아 집을 뒤진다. 갓난아이는 젖비린내와 초코 과자, 축축하게 젖은 일회용 기저귀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를 남기고 사라진다. 걸음마를 갓 배운 아기는 공동묘지의 주민들, 그러니까 유령들의 눈에 띄고, 그들은 잭을 따돌리고 긴 토론 끝에 아기를 키우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아기의 이름은 노바디(Nobody)로 짓고, 아기는 묘지의 특권을 부여받아 그곳에서 성장한다.

가족을 잃은 갓난아이가 우연의 기적 덕에 목숨을 건지고 집에서 떨어져 타인들 손에 자라며 뛰어난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부터 이어지는 고전적인 영웅 설화를 닮았다(그 아이가 신탁의 예언을 받았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노바디는 묘지에 살며 죽은 자들의 능력을 쓸 수 있게 되는데, 예컨대 사람들의 눈앞에서 사라지거나 타인의 꿈속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다. 그 어느 집보다 안전한 묘지에서 성장한 노바디는 커가면서 학교에 가고 싶어하고 세상을 알고 싶어한다. 닐 게이먼은 갓난아이가 십대가 되어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기까지의 시간을 매끈하게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운명의 부름을 받은 어린 소년과 그를 지키는 기이한 사람들 모두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특히 노바디의 가디언이라고 할 수 있는 사일러스!) 책을 1/10쯤 읽은 순간부터 시리즈로 만들어도 되겠는데,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크라잉 게임>의 닐 조던 감독이 영화로 만든다는 발표가 났다. 무엇보다 책을 다 읽고 노바디의 다음 모험을, 묘지 사람들의 이후 근황을 듣고 싶어지는 건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닐 게이먼이 다음 이야기도 어서 써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