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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스폰서…
고경태 2009-07-03

박찬욱 감독도 한때는 영화평을 쓰며 먹고살았다. 감독 입봉하기 전의 일이다. 그때 그에겐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고 한다. <박찬욱의 오마주> 서문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첫째, 한국영화는 건드리지 않는다. 둘째, 외화라도 극장 개봉을 즈음해서 발표되는 리뷰는 안 쓴다. 셋째, 욕하고 싶은 영화라면 차라리 아예 다루지 말자.” 여기저기 영화사들을 찾아다니며 작품 연출 기회를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씨네21>이라면 어떨까. 정반대다. 한국영화는 건드리지 않을 수 없고, 한국영화건 외화건 모두 극장 개봉 전에 프리뷰를 쓴다. 거기엔 칭찬만 담기지 않는다. 욕까지는 아니더라도 날선 비판을 할 때도 있다. 해당 영화사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개봉 전만이라도 부정적인 평을 자제해달라”는 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특히 20자평에 민감하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이해할 만하다. 뚜껑도 열기 전에 모욕당한 느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착한 영화평만 쓰지 못하는 현실은 딜레마다. 가령 20자평을 쓰는 기자와 외부평론가들에게 “개봉 전 영화는 되도록 씹지 말아달라”는 공지문을 보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독자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사들의 불쾌함 또는 섭섭함은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달 전, 한 영화사가 예약된 광고집행을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개봉 전 영화의 홍보 컨셉과 배우에 관해 비판한 외부 기고자 칼럼 때문이었다. 요즘처럼 먹고살기 힘든 시대에 ‘광고’는 강력한 무기이다. 광고만 많이 하면 해당 영화의 배우를 표지모델로 세울 수 있다고 예단하는 이들도 있다. 광고는 아니지만, 표지를 조건으로 해외 정킷에 기자를 보내주겠다고 제의하는 경우도 유사하다.

더 수위가 높아지면 기사를 원한다. 특정 분야에 관해 기획을 해주면 광고를 집행하겠다는 식이다. 특정 분야와 영화를 무리하게 연관시켜 글을 써달라는 광고주도 있다. 얼마 전 네티즌에게 비웃음을 산 아무개 인터넷매체의 기사 제목은 ‘영화 <마더> 흥행 대박 예감’이었다. 영화의 흥행에 원빈의 외모가 한몫했고, 그처럼 쌍꺼풀을 하려면 어떤 수술이 효과적인지를 다루면서 ‘아무개 성형외과 도움말’이라는 크레딧을 달았다. 이건 눈치없이 막나간 사례인데, 정말로 이런 기사를 바라는 분들이 가끔 계시다. 역효과가 날 텐데 말이다.

알다시피, 영화계에서 ‘스폰서’라는 어감은 부정적이다. 그 숨겨진 뜻은 ‘빗나간 후원자’다(아, 이 지점에서 <마더>의 쌀독이 떠오른다). 물론 <씨네21>은 그 유혹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그렇게 어려운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