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세게 놀던 아이가 고열 몸살로 앓아누웠다. 물 한 모금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찬 마룻바닥을 찾아 몸을 붙인 채 꼬박 하루 반을 보내더니 멀쩡하게 일어나 앉아 밥 달라고 나를 흔든다. 해열제 먹이고 얼음주머니 갈아주는 거 외에 도울 길이 없었다. 짐승처럼 신음하는 동안 옆을 지켜주는 거 외에는(음, 물론 텔레비전도 나와 함께 애를 지켰지). 안쓰러움과 기특함에 이어 생명의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누구한테랄 것 없이 고마웠다.
애 하나 키우면서도 배우는 게 참 많다. 그런데 대체 애를 넷이나 키웠다고 자랑하던 사람의 성품과 태도가 왜 저 모양인지 모르겠다. 그가 보스로 있는 이 정부는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제대로 된 대화 한번 하지 않았다. 사과는커녕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오리무중이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이렇게 중요한 일을 몇달째 방치할 리가 없다.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정부다. 행정안전부와 경찰 일각에서 대화 움직임을 보이자 청와대가 “대화는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고 알려졌다. 한마디로 제 풀에 지쳐 그만두길 바라는 심산이다. 주검은 다섯달째 냉동고에 있고 장례도 치르지 못한 유가족들은 영안실에서 먹고 자고 있다. 정당한 법집행이었다면 성의있는 대화와 응분의 조처를 회피할 이유가 없다. 수사기록도 공개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무정부지역에 사는 것도 아니고, 이 정부 관계자들이 사이보그도 아닌 이상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최소한의 염치도 예의도 휘발된 냉혈 철면피가 이 정부의 실용인가.
최근 터져나오는 시국선언과 집회에서 눈길을 끈 손팻말은 “부자감세 1년 20조원=월 200만원 일자리 83만3333개”였다. 역시 한국여성노동자회 여러분들 진정으로 실용적이다. 부자 감세분에 4대강 파내는 예산을 더하면 일자리는 훨씬 늘어난다. 잘해달라 안 하겠으니 잘해준다 우기지나 말고, 아니 제발 때리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87년 이후 처음으로 시국선언한 교수들도 한줌, 평일 저녁 제 발로 촛불 들고 모인 시민들도 한줌이라고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기에 바쁘다. 그들이 말하는 ‘절대다수’는 몸과 마음을 지키고자 납작 엎드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