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가 현직에 있을 때 그의 정책들은 마음에 안 들어도 그가 누구처럼 밉상이라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때로는 좀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는데 그에게 투표할 일은 없겠지만 옆집에 산다면 실없는 농담도 던지며 편하게 지내는 이웃이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유머감각 때문이었다. 이라크 기자의 신발이 얼굴에 날아오는 폭력을 당하고도 신발 사이즈 운운하는 농담이라니, 이 사건을 보고 많은 이들이 통쾌해했지만 솔직히 난 부시가 쪼끔 멋있어 보였다. 부시만의 재기라기보다 서구 정치인들의 그 여유가, 있어 보여서 부러웠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며칠 뒤 후배와 메신저를 하다가 물었다. ‘대통령일 때 욕만 했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 거지?’ ‘유머가 뭔지 아는 사람이었잖아. 노무현의 최고 매력은 유머감각이었지.’ 맞다. 그 순간 내가 느끼는 상실감의 정체를 간파했다. 여러 번 설파했던 바, 내가 어른의 가장 큰 덕목으로 꼽는 건 바로 유머감각이다. 아무리 바른 소리만 열심히 쏟아내더라도 유머감각 하나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나는 별로 믿지 않는다. 왜냐. 유머감각은 단순히 남을 웃기는 능력이 아니다. <한겨레> 강김아리 기자 말마따나(이름을 꼭 적어달란다) 유머감각은 “자신을 타자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자신 안에 매몰돼 있는 사람은 결코 남을 웃길 수 없다. 또 그렇기 때문에 남의 농담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회의나 자기반성은 더더욱 하지 못한다.
유학이 엄청난 기득권을 제공하던 시절, 미국물 좀 먹고 와서는 그게 너무 신기하고 흐뭇해, 하다못해 미국에서도 실패를 공인한 의료보험제도까지 수입하려고 안간힘 쓸 정도로 미제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저씨들이 딱 하나, 아메리칸 스타일의 유머감각만은 못 배워온 게 늘 아쉬웠다. 정작 자타공인 촌놈 노무현에게서 ‘아메리칸 스타일’, 몽둥이 든 선생 앞에서 국민교육헌장 낭독하는 학생 같던 ‘한국식’ 대통령의 아우라를 벗어난 자연스러운 대화 같은 연설, 카메라 앞에서 근엄 빼지 않는 여유, 무엇보다 농담을 던질 줄 아는 세련된 유머감각, 그러니까 TV 속 미국 대통령한테서나 볼 수 있었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다. 역량과 자질, 공과 과를 떠나서 그에게 변함없이 한표를 던지고 싶었던 건 이런 유머감각, 자신을 타자화할 수 있는 능력, 그리하여 부끄러워할 줄 아는 능력 때문이었다. 앞으로 그처럼 유머감각 있는 대통령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최소한 10년 안에는 힘들 거 같다. 어쩌면 내 평생. 별이 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