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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액세서리] 가난이 ‘스타일’을 만들다

<말라노체>

데뷔작 <말라노체>를 찍을 때 구스 반 산트 감독은 돈이 없었다(그 취향에 돈이 있다고 돈 들인 티가 나는 영화를 찍을 리도 없지만). 다만 마음속에는 늘 마을과 구름, 길과 청년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비전문배우들을 데리고 고향인 포틀랜드에서 입자가 터프한 흑백 필름으로 84분짜리 첫 영화를 찍었다. 담배와 위스키, 맥주 박스가 쌓인 졸렬한 구멍가게와 거의 넝마에 가까운 의상, 여드름이 빡빡 나고 허리엔 군살이 붙은 주인공들. 그 어디에도 매끈하다든가 전문적이라든가 하는 ‘세공된’ 느낌이 없다. 심지어 어떤 장면에서는 카메라에 검정 실오라기가 붙은 채 필름이 돌아간다. 컷과 컷 사이는 끽끽대고 조명도 불안하다. 영화는 그야말로 거친 것들의 조합으로 흘러간다.

폴몰 담배와 루트 비어, 세븐업을 파는 구멍가게 점원인 월터는 밀입국한 멕시코 청년 조니에게 한눈에 반한다. 청재킷과 청바지의 더블 데님 앙상블(김성재 말고는 아무도 소화 못한다는 최악의 스타일링)로 나타난 곱슬머리의 이 청년은 믹 재거와 맷 딜런을 묘하게 섞어놓은 얼굴이다. 그러고 보니 월터는 키아누 리브스와 리버 피닉스를 섞은 얼굴이기도 하다. 또 다른 멕시코 청년 로베르토는 늘 흰 티셔츠에 밑위가 긴 면바지, 웨스턴 부츠를 신고 벌집 모양 스피커가 달린 포터블 라디오를 들고 다닌다.

셋 다 돈도 없고 만나봤자 할 얘기도 없고 심지어 월터와 조니는 말도 안 통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가끔 즐겁다. 과속 운전을 하고 춤을 추고 담배를 나눠 피우고 그들만의 가게에서 공짜로 과일파이도 얻는다. 가장 아름다운 한때는 셋이서 드라이브를 나간 주말이다. 조니는 월터의 차 안에 있던 선글라스를 끼고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바람을 맞는다. 조니의 선글라스 렌즈 안에 긴 도로의 중앙선이 휙휙 지나간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를 찍을 때 가난했다. 환경이며 조건이 열악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게 차라리 어떤 스타일이 되었다”고 말했다. 감독의 말대로 이 영화는 거칠고 조악함이 ‘스타일’이다.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데서 2천원이면 살 것 같은 미러 선글라스도 조니의 스타일이고 구스 반 산트의 각본이다. 레이밴과 린다 페로 빈티지, 커틀러 앤드 그로스인들 이런 분위기를 제대로 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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