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은행에 가면 지난달부터 계속 주택청약종합저축에 들라고 들볶인다. 아무나 들 수 있으니 일단 가입 예약하고 나중에 신분증 갖고 오면 된다며, 보리쌀 등 푸짐한 사은품도 준단다. 인턴 사원까지 가세해 입구에서 홍보물을 나눠주며 “교육적금보다 높은 최고의 이자율”, “나중에 아이의 집 장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속삭인다. 사탕 얻어먹는 재미에 은행 따라다니는 딸아이를 향해 “엄마에게 네 이름으로 이거 만들어달라 그래” 꾀기도 한다. 미성년자, 유주택자도 가입할 수 있다면 주택청약 정책에 위배되는 거 아니냐고 물으니, “저희는 정부 정책을 대행만 해주는 것이라 그것까지는…”이라고 꼬리를 내린다. 한마디로 은행 돈벌이가 아니라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는 일이란 말이다. 어우어. 이놈의 토건삽질이 네살된 영혼에까지 마수를 들이밀다니.
나 정도의(음, 솔직히 말하면 내 수준의) 지성을 자랑하는 사람이라면 주택정책이 언제 바뀔 줄 알고 흥! 하면 그만인데, 문제는 꽤 입맛 당기는 상품이라는 것이다. 건설 붐을 위해 은행을 통해 장난질치는 속셈을 뻔히 알지만 소수점 이하 포함 연리 몇 퍼센테이지에 마음이 흔들린다. 유가환급금 돌려준다며 일거에 돈 벌고 쓰는 전 국민의 조세투명성을 낚아낸 이 정부의 ‘어떤 유능함’이 이런 데서도 빛을 발하나 싶었다. 거부감에 이어 죄책감도 따랐다. 남들은 닫힌 광장 열라고 데모 나가는 날 동네 은행에 쭈그려 앉아 이자율 따지는 자신이 한심해지려는 찰나, 다행히 나에게는 월정액으로 ‘국민주택기금 조성’에 동참할, 아니 적금 부을 여윳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하하하하흑흑흑.
그렇지만 이 거꾸로 가는 건설 바람은 한나라당 이한구 아저씨 말처럼 자꾸 “신경이 쓰인다”. 아저씨는 “(4대강 사업이) 하는 김에 주변까지 다 개발해서 리조트나 만들어보는 식으로 가고 있다”며 “(공식예산만 22조원이 넘는) 100% 국가 부채로 하는데, 미래 산업을 키우고 지속 가능한 고용창출에 투입해도 모자라는 판에 토목사업을 자꾸 확대하는 쪽으로만 가는 것이 굉장히 신경 쓰인다”고 하셨다. 아저씨, 근데 신경만 쓰실라고요? 이거 너무 한가하고 우아하시잖아. 그러다 “집에나 가”서 “세뇌” 당하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