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지나간 자리, 웃음이 돋는다. 전직 대통령의 비극을 둘러싼 그림자가 한동안 너무 깊었다. 그 우울한 모드를 몇 가지 일들이 전환시켜주었다. 지난주 폭소유발 아이템 베스트3를 내 맘대로 정리해보겠다.
No1, <개그콘서트>보다 재밌는 <아사히TV>의 개그였다. 한국인 40대 남성이 휴가 가서 한가하게 찍은 기념사진이, 북한 김정일의 후계자로 알려진 셋째아들의 것으로 둔갑한 일은 두고두고 생각해도 웃긴다. 뭔가 음산한 냄새까지 풍기는 언론보도용 ‘얼굴 클로즈업 사진’과 주변 원두막 풍경이 다 드러난 ‘와이드숏 원본 사진’의 하늘땅 차이. 트리밍(사진편집)의 마술이란 말인가. 심각한 첩보영화의 엉뚱한 반전에 미친 듯 배꼽을 잡은 느낌이다. 이 보도를 인용한 국내 언론의 북한 전문가 코멘트는 또 어떠한가. “얼굴이 둥글고 목이 두꺼우며, 살집이 많은 점으로 미루어 김정일의 젊은 시절을 쏙 빼닮았다.” 허위보도를 질책하며 언론의 정도를 따질 필요는 없다. <아사히TV>, 잘~했다. 나중에 또 한번 사고쳐다오.
No2, 문화평론가 진중권씨 블로그였다. 그는 요즘 ‘사이버 망명’ 중이라고 한다. 미디어다음에서 블로그를 하다가 누군가의 권리침해신고로 접근금지조치가 되었고, 불가피하게 미국에 서버를 둔 구글의 블로그스폿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처음 쓴 글이, 그동안의 사연이 응축된 ‘듣보잡에 관한 단상’이다. ‘듣보잡’은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흠좀무(흠, 이게 사실이라면 좀 무섭군), 열폭(열등감 폭발)따위의 인터넷 조어다.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란 뜻인데, 진중권씨가 누군가를 향해 이 단어를 써 그가 앙심을 품었다고 한다. 그 누군가란, 이명박 정권 아래서 대단한 위세를 떨친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진중권씨하고는 원수맺기로 혈서라도 쓴 모양이다. 검찰에 고소까지 했으니…. 진중권씨 블로그엔 둘 사이 논쟁의 전말이 엿보이는데, 코미디적 상황과 문화재급 독설이 일품이다. 폭소와 실소가 연속되다가 살짝 짜증이 치미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한예종 사태와 관련한 누군가의 지겨운 정치 공세를 확인하게 되어 그렇다. 심심한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그렇다고 지나친 희화화는 곤란하다는).
No3, 영화 <드래그 미 투 헬>이었다.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웃겼다. 심지어 공포영화였음에도! 샘 레이미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비명을 지르게 하다가 순식간에 웃음의 일격을 날린다. 은행원 크리스틴에게 저주를 퍼붓는 가누쉬 할머니는 무서우면서 왜 그렇게 귀엽단 말인가(틀니는 압권이었다). 가슴에 돋는 웃음으로 팔뚝의 소름을 녹이는 영화랄까. 뜨거운 여름, 근사한 생맥주 같은 공포영화들을 음미하는 것도 괜찮겠다.
아무튼 세상이 답답할수록 폭소를 부르는 아이템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현실이건, 영화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