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조합
성장 단백질이자 고도비만의 주범
성장기에 꼭 필요했던 단백질, 혹은 고도비만을 일으킨 주범이다. 영진위가 지난 2000년부터 시행해온 투자조합출자는 한국영화의 성장을 양적으로 평가할 때와 질적으로 평가할 때 각각 다른 얼굴을 한다. 투자조합출자는 영진위가 재원을 소진하지 않으면서 자본의 유동성에 장기적으로 대처할 만한 방안으로 고려된 간접지원방식이다. 예를 들어 공적자금 20억원을 종잣돈으로 영화계 외부의 돈 80억원을 추가로 모아 100억원 규모의 재원을 마련, 영화제작에 투자하는 것이다. 영진위는 2006년까지 총 28개 조합을 운영해 총 245편의 영화에 약 2113억원을 투자했다. 시행준비단계에서는 “영화계의 몫을 왜 금융자본에 넘겨주느냐”는 식의 비난도 있었지만 영화산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전에 자본이 안정화되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단계에서 일정 정도의 유인책이자 안전판으로 기능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영화의 양적 성장은 독과점의 심화, 수익성 악화라는 문제점을 일으켰다. 애초에 투자조합방식의 지원이 제작편수를 늘리는 데에만 고민했지, 그에 따른 배급-상영의 문제는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일었다. 여기에 영화계가 굳이 공적자금의 도움 없이도 자체적으로 투자조합을 결성할 수 있을 만큼 산업화 단계에 도달했다는 인식도 영진위 펀드의 위상을 저해했다. 이에 3기 위원회는 2007년부터 기획개발전문투자조합과 다양성영화전문투자조합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한편, 국내 메이저 기업의 수직계열화를 견제할 중대형 투자조합을 결성했다. 한 투자관계자는 “이제는 그런 논란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한다. “지금 같은 극단적인 위축상황에서는 그나마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투자조합 덕분에 1년에 40편이라도 만들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영진위의 중대형 투자조합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이견도 있다. 부분투자자들이 영화계와 절교한 상태에서 또 다른 메인투자자가 등장한다고 해도 얼마나 효력을 거둘지에 대한 의심이다. 한국영화의 양적 성장과 함께 거품을 씌운 투자조합사업의 새로운 모색은 꾸준히 필요할 전망이다.
# 부산 이전
남양주종합촬영소가 팔려야
“영진위의 부산 이전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중략… 부산으로 가는 게 옳으냐에 대해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문제가 많다는 거다.” 지난해 7월3일 영진위의 11차 임시회의에서 나온 강한섭 위원장의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영진위의 부산 이전은 참여정부 시절 수립된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을 실용정부가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재확인한 것이다. 불변의 계획으로 여겨지던 영진위의 부산 이전에 대해 영진위 수장이 문제가 많다고 하자, 부산시가 들끓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나서서 “이전 정부에서 확정된 영진위 이전계획은 현 정부에서 어떤 변경도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강한섭 위원장이 “예정대로 부산으로 이전하겠다”고 답변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영진위의 부산 이전은 사실상 논란이 될 수 없는 사안이다. 가긴 가야 한다. 다만 딜레마가 있다. 문제는 이전 비용이다. 정부 방침에 따라 각 공공기관이 이전 비용을 자체조달하게 되어 있다. 영진위는 현재의 홍릉사옥과 남양주종합촬영소를 매각해 부산 센텀시티 내 신사옥과 부산영화촬영소 등을 짓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한데 남양주종합촬영소는 아직도 팔리지 않고 있다. 한때 테마파크건설 열풍이 불면서 몇 차례 매각이 추진됐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게다가 촬영소 부지가 팔당상수원보호지역에 위치한 터라 신규시설 건립이 어렵다는 점도 매각을 쉽지 않게 만드는 요인이다. 부산시는 정부에 이전비용을 먼저 지원한 뒤, 남양주촬영소 매각대금으로 보충할 것을 요구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결론이 나온 건 아니다. 계획대로라면 영진위는 2012년에 경부선을 타야 한다. 이제 3년 남았다.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여비를 조달할 것인지가 열쇠다.
# 기술사업
부산영상후반작업시설과 차별을
지난 2007년 1월 중순, 영진위 노동조합은 11일간 농성을 벌였다. 당시 김혜준 영진위 사무국장이 2006년 12월 ‘부산발전포럼’에 기고한 ‘부산 영상도시 만들기를 성공시키기 위한 점검’이라는 글이 발단이었다. 이 글에서 김혜준 전 사무국장은 “수익성 측면에서 손실을 내고 있는 영진위 기술 부문”의 축소 혹은 폐지에 대해 언급했다. “가까운 시일 안에 기술사업 자체를 아예 포기하거나 교육지원이나 기술전략 연구와 같은 최소한의 영역만으로 역할을 크게 줄이자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는 상황이다.” 반발한 영진위 노조는 “노조와 사전협의 없이 조직 개편을 논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며 김혜준 사무국장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안정숙 위원장의 고용안정 보장, 향후 기술사업에 대한 논의를 노조와 협의하에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사태는 김 사무국장이 공개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영진위의 기술사업은 앞으로도 적잖은 논란에 휘말릴 전망이다. 영진위 기술사업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지가 관건이다. 김혜준 전 사무국장은 이 글에서 “영화진흥공사가 1978년 기술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공공부문이 그 역할을 맡는 게 자연스러웠지만 지금은 민간업체도 기술사업을 담당할 수 있을 만큼 덩치가 커졌고 디지털 기술의 도입으로 기술사업은 다변화된 상태다”라며 “적어도 기술사업에 관해서만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공부문의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진위가 설립될 당시, 5대 추진 목표 중 하나였던 ‘기술사업의 공공성 강화와 영상기술의 국제경쟁력 확보’라는 취지를 생각할 때, 기술사업을 공공의 기능으로 남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영진위가 제작지원사업 선정작들에 영진위 영상기술지원센터의 영화후반작업 시설을 이용해 현물지원을 하는 것과 공공영상제작기술지원사업 등이 이 취지에 속하는 기술사업이다. 부산 이전을 앞둔 영진위로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과 지난 2월24일 개관한 부산영상후반작업시설과의 차별성을 만드는 것이 고민거리다. 조정은 어떤 식으로든 필요할 듯 보인다. 그만큼 어떤 논란이든 가열차지겠지만.
# 색깔논쟁
1기부터 시작된 신구 갈등
“현재 영진위 위원들의 면면을 봐라. 다 노사모 일색 아니냐.” 정인엽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은 지난해 1월 <씨네21>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이었던 때다. 당시 감독협회는 성명을 통해 “지난 10년의 문화예술은 이념 선동의 수단으로 동원됐다”며 “영화진흥공사를 법까지 바꿔가며 영진위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했는데, DJ 정부의 이념적 전략과 그것을 등에 업은 몇몇 아류 영화인들의 동조로 결국 실현됐다”고 주장했다. 영진위는 반박했다. “국회로부터 국정감사를 받고, 기획예산처가 주관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받아온 준정부기관에 대해 정치권과의 결탁을 운운하는 것은 민주적 운영원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사실 감독협회의 주장에 대한 대체적인 반응은 시큰둥이었다. 근거없는 주장들에 대꾸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영진위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은 좌우를 가르는 논쟁이자, 영화계 내의 신구 갈등이다. 이는 영진위 구성 초기부터 있었다. 1999년 5월, 1기 영진위 위원이 확정되자 위원 중 한 사람이었던 당시 김지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은 “위원 위촉을 수락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영진위 구성에 하자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지미 이사장과 또 다른 위원인 영화배우 윤일봉이 위원회 참석을 거부하면서 갈등을 겪자 문화부는 당시 신세길 위원장과 문성근 부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설립 3개월 만에 옛 문화공보부 관료 출신인 박종국과 조희문 영화평론가가 새로운 위원장과 부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영화계는 새 지도부의 성향이 개혁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반발했고 영진위 개혁파로 불리던 3인의 위원인 정지영, 안정숙, 문성근은 위원회에서 사퇴했다.
영진위 내의 갈등은 영화계 내의 신구 갈등을 촉발시켰고, 젊은 영화인들이 중심이 된 영화인회의 출범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후 10년이 지났고 4기 영진위가 출범했다. 현재는 전임 영진위를 ‘좌파세력’으로 규정해 비난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이 종종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