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마켓에서 상영된 영화 편수를 바탕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잘나가는 배우 목록을 만들어온 지 올해로 3년째다. 최근 칸영화제 마켓에서는 100여편이 넘는 아시아영화가 상영됐다. 올해는 그 수가 70편으로 감소된 탓에 과연 이 계산법이 유효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 70편 중 43%에 이르는 30편은 일본영화이고, 23%에 이르는 16편의 영화는 한국영화다. 일본영화와 한국영화가 마켓에서 상영된 아시아영화의 2/3를 차지하니 다른 아시아 나라 배우가 빛을 발할 여지가 없는 셈이다. 나머지는 중국, 홍콩, 대만과 타이에서 온 소수의 영화들이다.
국가별 제작 차원에서 보면 지난 12개월 동안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화의 10%에 못 미치는 영화들이 칸에서 바이어들에게 보여진 셈이다. 한국영화는 15∼20%에 이른다. 홍콩과의 합작영화(대부분 홍콩 배우와 스탭들이 참여한)를 빼면 지난해 중국 본토에서 제작된 영화의 1%만이 올해 칸에서 바이어들에게 보여졌다. 인도네시아영화는 0%다.
내 계산법에 따르면 60명의 배우들이 올해 마켓에서 상영된 영화 중 한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고 12명이 두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네편의 영화가 상영된 가장 다작의 배우는 34살의 일본 배우 아라타. 아라타의 편수가 이렇게 높은 것은 그가 블록버스터영화 3부작 <20세기 소년>에 출연한 덕택이다. 아라타는 10년 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원더풀 라이프>에서 한 나이 많은 남자가 천국에 가기 전에 가장 좋아하는 기억을 고를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을 맡은 도우미 역을 연기했다. 아라타의 최근 역할은 역시 고레에다의 <공기인형>에서 배두나와 함께 일하는 비디오 가게 점원이다. 그 사이에 아라타는 와카마쓰 고지의 <실록연합적군>과 니나가와 유키오의 <뱀에게 피어싱> 같은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다.
다른 일본 배우로는 30살의 일본 여배우 아소 구미코가 있다. 그녀는 미키 사토시의 기이한 코미디 <인스턴트 스웜프>에서 아버지의 오래전 잃어버린 러브 레터를 발견한 뒤 매일의 생활 속에서 마술을 발견하게 되는 역할을 맡았다. 이번 주말 도쿄에서 개봉한 요코하마 사토코의 <베어 에센스 오브 라이프>(일본 제목은 <초기적 사랑 이야기>)에는 더욱 예측하지 못한 마술이 숨어 있다. 아소는 15년간 결코 평범하다 할 수 없는 필모그래피를 만들어왔다.
올해 칸 마켓에서 상영된 세편의 영화에 출연한 단 한명의 한국 배우가 26살의 황우슬혜라는 것은 놀라우면서도 즐거운 발견이다. 남자 독자와 여자 독자들의 견해가 다를 지도 모르나 <미쓰 홍당무>에서의 예쁜 선생님과 <과속스캔들>에서의 유치원 원장으로 출연한 그녀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또한 박찬욱의 <박쥐>와 정승구의 <코끼리를 찾아서>에도 출연했다.
내 나름대로 2009년을 빛낸 얼굴을 뽑는다면 히로키 류이치의 네 시간짜리 광란적 로맨스영화 <러브 익스포저>에서 상징적 연기를 보여준 23살의 미쓰시마 히카리다. 또 만화가 원작인 <프라이드>에서 그녀는 자신의 연기 역량을 펼쳐 보였다. 그러나 두 영화 모두 올해 칸 마켓에서 상영되지 않았다. 그러니 다음 1년을 위해서는 내 계산법을 대폭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