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나라다.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제21조 1항)고 규정돼 있건만, 요즘 들어선 이같은 헌법정신이 제대로 구현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흔히 ‘표현의 자유’라고 부르는 이 국민의 지당한 권리는 비단 서울광장과 대한문 앞에서만 가로막히는 게 아니다. 인권영화제의 경우도 그중 하나다.
올해로 13번째를 맞는 인권영화제는 애초 6월5일부터 7일까지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리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청계광장 사용 허가를 내줬던 서울시는 돌연 허가 취소를 통보했다. 인권영화제에 따르면 이들은 행사 개막을 불과 이틀 앞둔 3일 오후 서울특별시시설관리공단으로부터 ‘청계광장 사용 허가에 대한 변경(취소)사항 알림’이라는 공문을 받았다. 청계광장이 “시국관련 시민단체들의 집회장소”로 활용되는 탓에 “부득이하게 시설보호 필요성이 있어” 허가를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영화제쪽은 4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방침을 규탄했으며, 법원에 이 조치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이상희 변호사는 “영화제쪽의 의견을 청취하는 어떤 절차도 없었고, 심지어 전화 한통 걸어주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통보해 적법한 절차를 따랐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저항 탓이었을까. 서울시는 4일 밤 입장을 급선회했다. 서울시는 이 문제가 쟁점화되자 인권영화제쪽에 대화를 요청했고, 결국 청계광장에서의 행사 개최를 다시 허가했다. ‘심의 없이 영화를 상영한다’는 원칙을 지키다 지난해 거리로 내몰렸고, 자칫 거리에서도 내쫓길 뻔했던 인권영화제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강고한 입장은 이로써 지켜질 수 있게 됐다.
<반두비>에 대한 등급 결정 또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지난 5월21일 <반두비>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부여했다. 영등위의 등급분류 결정서에 따르면 “여고생이 안마시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자들에게 자위를 해주는 장면”, “원어민 영어강사의 한국여자가 쉽다는 비하적인 발언, 임금 체불하는 악덕 사장 장면” 등을 지적해 사실상 <반두비>라는 영화 자체를 문제로 삼은 듯 보인다. “청소년들이 다양하게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고 건전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좋은 가이드 역할”을 기대하며 이 영화를 만든 신동일 감독과 영화사가 반발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영등위가 이 결정을 내린 진짜 이유는 뭘까. 이 영화를 본 청소년들이 마사지 업소에 일제히 취업할까봐? 아니면 외국인 영어강사나 악덕 사장들을 집단 폭행할지도 몰라서? 혹시 “나 명박이 믿고 뉴타운 믿다가 좆돼버렸어”라거나 “왜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별명이 쥐라고 불리나요?” 같은 대사를 들은 청소년들이 시청앞으로 나올지 모른라고 판단한 건 아닌가. 이런 문제제기가 영등위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지만 <작전>에 이어 이런 의문이 다시 제기되는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표현의 자유는 그것을 수용해야할 사람들이 접할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영등위원 여러분, 정말 청소년들의 지적 수준이 당신들의 그것보다 낮다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