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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의 작업의 순간] 저들은 또다시 한국을 배신했다
이다혜 2009-06-12

일은 많고 날은 덥고 몸은 아파 휴가를 냈다. 옛날엔 열심히 일해서 여행을 가려고 휴가를 썼는데, 이제는 열심히 일해도 돈이 안되는데 마침 건강도 안 좋아져서 일을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병원 순례를 위해 휴가를 낸다!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일산 호수공원 산책조차 바라지 않은 휴가였다. 병원들을 순례하며 각종 치료를 받고 남는 시간은 피곤하면 피곤한 대로 방바닥을 기어다니면서 밀린 일을 하려고 어렵사리 짜낸 휴가였다. 그 휴가의 첫날 아침, 동생이 방문을 확 열더니 “노무현 죽었대!”라고 나를 깨웠다.

아마 다들 비슷했겠지만, 처음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뉴스를 보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갔다. ‘그래도 죽는 건 아니다’ 하는 생각도 했다. 23일 밤이 되어서야 눈물이 나기 시작했는데, 나만 울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슬픔, 무력감, 분노가 무한 반복을 시작했다. 23일 밤에 덕수궁 앞 분향소를 다녀온 친구 말은 이랬다. “한 사람이 기타를 들고, 아마 고인에게 바친다는 의미에서였던 듯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하필 <어머니와 고등어>를 부르는 거야. 뭔가 맥락이 닿지 않는데 또 어떤 마음인지는 알겠고 그런….” 그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말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건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서울시청 앞의 굳건한 경찰차벽일 것이다. 잉카인도 부러워 울고 갈 그 빈틈없는 버스벽.

할 수 있는 게 우는 것밖에 없다니 무슨 갓난아이도 아니고. 서울광장을 그리 닫아버리니 간신히 잦아들던 마음은 산산이 쪼개지고. 조용히, 그저 내일의 밥벌이를 고심하며 살고 싶은 사람 등을 떠밀어 촛불 들고 거리에 나서게 만드는 이 환상적인 정부 같으니. 시위하게 만들면서 시위하면 잡아가니 ‘츤데레’의 변용인가.

가장 믿음직했던 대통령, 친구이자 동지를 잃고 애통해하는 일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가 처음은 아니었다. 칠레의 시인이었던 파블로 네루다는 “위대한 동지 아옌데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지 사흘 후에” 자서전의 최종장을 마무리했다. 상황이 다르고 인물은 다르지만, 마지막 문장은 가슴을 친다. 저 마지막 문장에서 ‘칠레’를 ‘한국’으로 바꾸어도 어색하지 않아, 몹시 두렵고 슬프다.

아옌데는 탁월한 연설가는 아니었다. 지도자로서 그는 가능한 모든 통로를 통해 자문을 얻는 통치자였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처리했다. 아옌데 시대의 민중은 발마세다 시대처럼 어수룩하지 않았다.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강력한 노동자 계급이 존재했다. 아옌데는 집단적인 지도자였다. 아옌데는 민중 계급 출신은 아니지만 부패하고 정체된 착취 계급에 대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중략) 저들은 살해 행위를 은폐하고 비밀리에 매장했다. 미망인만이 불멸의 육신을 동행할 수 있었다. 공격자들의 말로는, 대통령 궁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으며, 자살의 흔적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 언론의 견해는 다르다. 공중 폭격 직후, 수많은 탱크들이 작전에 돌입했다. 단 한 사람, 칠레공화국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를 노린 대담한 작전이었다. 아옌데는 불꽃과 연기로 뒤덮인 집무실에서 혼자 당당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저들은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절대 사임하지 않을 것이기에 기관총을 난사해야 했다. 시신은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비밀리에 매장했다. 무덤까지 가는 길에 동행한 사람은 오직 한 여인, 전세계인의 애도를 한몸에 안은 여인이었다. 시신은 칠레 군인들이 난사한 기관총에 맞아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저들은 또다시 칠레를 배신했다.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파블로 네루다 지음, 민음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