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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그의 영화] <전원일기: 더 보겠니>를 수출하자
김연수(작가) 2009-06-04

황지우 총장 사퇴로 떠올린 애국 영화관, 그리고 한국의 <스타트렉>같던 <전원일기>

결국 한국예술종합학교 황지우 총장이 사퇴했다. 원래 학내 투표 결과, 총장으로 추대된 사람이니까 외부에서 오는 다른 임명직과 달리 내년 2월까지 임기를 모두 채운 뒤에 물러나겠다던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자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공금 유용(액수를 보면 누군가는 또 칼럼에서 잡범 수준이니 용서하자고 할 것 같은데)과 근무지 이탈(한 기사 댓글에 따르면 “총장이 대학교 수위냐고요?”) 등의 책임을 물어 교수직 파면까지 가능한 중징계 절차에 나섰고, 그 결과 그는 압력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 듣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더라.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시인을 잡범 수준으로 만들어 내쫓다니,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를 체육적으로 관광하시는 곳인가효?

영화 보기 전 새떼처럼 일어나던 그 시절

바야흐로 애국 정도는 한번 해주셔야지 총장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시절이 찾아온 것 같다. 거기까지면 좋은데, 여기서 더 나아가 애국 정도는 한번 해주셔야지 영화를 보는 시절까지 다시 찾아오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애국하느라 좀 힘들었는가. 극장에 가서도 반드시 애국한 뒤에야 애인의 손을 마음껏 만질 수 있었지 않은가. 지난호에 고향친구가 썼듯이 앞줄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해도 애국 한번 정도는 해야만 했다. 애국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모르는 친구들은 황지우의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읽어보길 바란다. 옛날 시집을 읽으면서 ‘이젠 어디로 떠야만 하나?’ 하는 생각이 드니 참 한심하기만 하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삼천리 화려 강산의/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맞다. 옛날에는 매너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올 자리에 애국가가 흘러나왔던 것이다.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모든 사람들은 을숙도 새떼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그 시절, 한국 드라마의 최고봉이라면 <전원일기>였다. 제1화 ‘박수칠 때 떠나라’가 시작한 건 1980년 10월21일이었는데, 이날은 따져보지 않아도 화요일임에 틀림없다. <전원일기>는 화요일. 그런 것도 모르고 어떻게 제5공화국 초등학생 노릇을 제대로 했겠는가. <전원일기>에 등장하던 수많은 캐릭터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제일 먼저 양촌리 김 회장댁 식구들. 김 회장(최불암)도 참 인상적이었지만 할머니(정애란), 어머니(김혜자), 첫째며느리(고두심)로 이어지는 여성 삼대도 인상적이었다. 또 큰아들(김용건)과 둘째아들(유인촌)의 서로 다른 성격도 늘 플롯에 힘을 보탰다. 또 일용네를 뺄 수 없겠고, 원조 얼짱 응삼이나 구멍가게 숙이네 혹은 노인 삼총사도 기억난다. 워낙 캐릭터가 또렷한 드라마다 보니 매회 흥미진진한 사건이 벌어지면서도 캐릭터가 서서히 성장해나가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도 초등학교 4학년에서 어느새 졸업반이 됐고, 양촌리에도 경사스러운 일이 여럿 일어났다. 김 회장댁에서는 둘째가 결혼해 분가하면서 둘째며느리(박순천)가 새로 등장했고, 둘째와는 절친한 사이인 일용이도 제짝을 찾으면서 일용처(김혜정)가 합류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새로운 친척이 생기기라도 한 것처럼 그 여자들의 됨됨이를 따졌다. 둘째며느리는 좀 철이 없어서 처음 시집 와서는 눈물깨나 쏟았는데, 가방끈 짧고 혈기가 넘치는 둘째와는 제법 어울리기는 했다. 하지만 큰며느리처럼 남편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결혼한 뒤에 오히려 둘째가 분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일용처는 나름 한성질했기 때문에 그간 일용네를 약간 낮춰보던 김 회장댁 식구들 앞에서도 전혀 꿀리는 바가 없었다. 이 때문에 일용이는 또 속을 썩이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화요일마다 <전원일기>를 시청하다보면 등장인물들의 과거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따금 드라마는 그들의 과거를 살짝살짝 보여줄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첫째 며느리는 아무리 봐도 시골 아낙네처럼 보이지 않았다. 뭔가 배운 티가 좔좔 흘렀다. 한번은 이 첫째며느리의 과거에 대해서만 다룬 적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서울이 고향인 도시 여자로 (무려!) 대학교까지 졸업한 엘리트였던 것이다. 모처럼 서울 친정에 가서 달라진 서울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녀가 혼자 씁쓰레 웃던 장면이 떠오른다. 두 형제 사이의 알 듯 모를 듯 팽배했던 긴장감 역시 그들의 지난 사연이 방영되면서 그 이유가 밝혀졌다. 형(김용건)의 학업을 위해 동생(유인촌)이 일방적으로 희생됐던 것이다. 김 회장은 여느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형만 편애하고 동생에게는 일찌감치 농사를 짓게 했던 것이다. 언젠가 한번 둘째가 농사를 그만 짓고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말했다가 김 회장에게 박살난 적이 있었다. 그때 둘째가 울면서 형 때문에 망가진 자기 인생을 토로할 때 마찬가지로 동생의 처지였던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맥락없이 프리퀼을 보는 괴로움을 아니?

가장 유명한 미드인 <스타트렉>을 영화화한 <스타트렉:더 비기닝>을 보는데, <전원일기> 생각이 났다. 캐릭터에 대해서 하나도 모른다는 게 억울해서였다. 물론 그 영화는 <스타트렉>의 캐릭터를 전혀 몰라도 감상에는 상관없게 만들었다. 스팍 같은 경우에는 등장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특징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커크 함장은 물론이거니와 맥코이, 우후라 등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타트렉>의 그 기나긴 역사를 예습하지 않고서는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기가 곤란했다. 심지어는 예습했는데도 불칸과 로뮬란 사이의 갈등은 쉽게 이해되지 않아서 다시 복습해야만 할 정도였다. 워낙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좋아하니까 즐겁게 보기는 했지만, <스타트렉>을 완벽하게 감상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꽤 아쉬웠다.

그러다보니 <전원일기>가 생각났다. 미국에는 <스타트렉>, 한국에는 <전원일기>, 아니겠는가? 내 또래의 사람들은 타이틀에 흘러나왔던 색소폰 소리와 소 울음소리만 들어도 고향의 푸근한 정에 침을 질질 흘린다. 김 회장과 어머니의 연애 이야기나 첫째와 둘째의 학창 시절 같은 프리퀼이라고 해도 예습이나 복습 따위는 전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이 영화를 수출해서 미국 사람들에게도 맥락없이 프리퀼을 보는 괴로움이 어떤 것인지 일깨워줬으면 좋겠다. 인간들이란 불칸인과 달라서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그 고통을 모른다. <스타트렉>과 마찬가지로 시리즈를 만들었던 주역들이 점점 죽어가고 있거나 다시는 연기 안 할 생각으로 살고 있으니 서두르는 게 좋겠다. 제목은 <전원일기: 더 보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