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고도 짐작 가능하듯이 더스틴 호프먼과 톰 크루즈가 열연한 <레인맨>(1988)의 연극 버전이 맞다. 산뜻한 청년이던 톰 크루즈가 어느덧 아빠로 변신했을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형제애의 뭉클함만은 녹슬지 않고 반짝인다. 인터넷 주식 트레이더 찰리 바비트의 세상은 돈으로만 굴러간다.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듣고 동거녀 수잔나와 함께 고향 신시내티로 돌아온 그는 하나뿐인 혈육의 임종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다. 눈물샘이 말라붙은 이 남자의 목적은 유산이다. 그런데 300만달러가 넘는 아버지의 재산을 자폐증에 걸린 낯선 남자 레이몬드가 물려받을 예정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찰리는 레이몬드를 기억하지 못한다. 레이몬드가 자신의 친형이자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바로 그 ‘레인맨’이라는 사실도. 팔과 가슴에 화상을 입은 그는 마음속 가장 보드라운 부분을 분노라는 감정으로 뒤덮어버렸다. 대신 그 모든 풍경을, 레이몬드는 기억한다. 어머니가 해주던 따뜻한 음식, 아버지의 무릎에 앉은 채 만지작거리던 운전대, 동생 찰리의 웃음소리, 뜨거운 물에 빠졌을 때 그가 내지르던 비명 섞인 울음까지. 변화에 적응할 수 없는 이 가엾은 남자의 삶은 그때의 추억으로만 지지될 수 있다.
<레인맨>은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잊은 동생과 잊혀진 형. 동생은 기억을 흘려보내려 하고, 형은 암기에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한다. 그 중심에는 가족이 있다. 기억을 되찾은 찰리는 레이몬드까지 되찾고 싶어 하지만, 동생과 그 아이들의 안위를 위해 형은 자신을 고립시킨다. 더스틴 호프먼의 빛나는 연기를 기억한다면 무엇보다 레이몬드 역을 누가, 어떻게 소화할까가 궁금하지 않을까. 5월까지는 영화로도 익숙한 두 배우 임원희와 이종혁이 형과 아우를 각각 연기하는데, 임원희는 마지막 인사를 건넬 때까지도 능청스럽게 캐릭터에 빠져 있다. 6월부터는 김성기(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와 김영민(<경축! 우리사랑>)이 바통을 이어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