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길바닥에서 영화를 보게 생겼다. 13회 인권영화제가 6월5일부터 7일까지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다. 지난해 상영등급 분류를 거부하며 극장을 잡지 못했던 인권영화제가 올해도 같은 이유로 거리 상영을 한다(자세한 내용 참조). 영화제쪽은 “표현의 자유, 문화 향유권 보장을 위해 거리 상영에 나선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영화제는 등급분류 없이 자유롭게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완전등급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올해는 영화제 기간이 7일에서 3일로 줄었다. 청계광장은 한 단체에 최대 3일까지만 사용이 규정되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란다. 그래서 영화제쪽은 영화제 기간이 끝난 뒤(6월11~14일) 마포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재상영을 한다. 상영관이 허허벌판에 가까운 광장이기에 스크린 상영에 필요한 기타 시설도 없다. 모든 영화는 전광판으로 상영된다. 그야말로 영화제 자체가 투쟁인 셈이다.
상영작들도 투쟁 일색이다. 특히 국내 신작의 경우 큼지막한 사건들이 뻥뻥 터진다. 소고기 정국 이후 고조된 불만, 저항의 목소리가 단숨에 터져나오는 느낌이다. 용산참사의 기록을 담은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개발에 맞선 그들의 이야기>, 대학 등록금 문제를 짚은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 장애인 기초생활수급비의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한 <작은 새의 날개 짓>, 2007년 대선의 정치적 후퇴를 조롱한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이랜드 투쟁을 통해 현재의 노동현실을 지적한 <효순씨, 윤경씨 노동자로 만나다> 등. 만듦새는 전체적으로 투박하지만 이들은 마치 최근의 대한민국 사회를 정리라도 하듯 문제를 제기한다. 시기적절하고 의미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만연화된 사회문제를 다시 지적한 작품들도 있다. 여성운동 활동가들이 연기부터 연출까지 모두 자급자족한 영화 <고양이들>은 결혼과 독립의 의미를 미혼이 아닌 비혼(非婚)으로 정리한다. 두 레즈비언 커플과 한 여성의 삶을 교차해 보여주며 이성애 중심의 결혼질서를 몸으로 부정한다. 스스로를 여우가 아닌 고양이로 정체화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관계가 아닌 자신에게 필요한 관계들로 삶을 완성해간다. 최초 레즈비언 후보로 18대 총선에 나섰던 최현숙씨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돋보인다. 대다수의 시각장애인은 안마사가 되고 마는 현실을 고발한 작품 <당신이 고용주라면 시각장애인을 고용하시겠습니까>는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스스로의 꿈을 얘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실적인 조건들이 꿈마저 위축시키는 대한민국에서의 시각장애인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해외 작품들 중에는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합작의 <노예>, 이탈리아영화인 <헤어 인디아> 등이 눈에 띈다. <노예>는 수단 군부의 악질적인 행태를 고발하는 영화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감독은 내전 이후 여자와 어린이를 납치해 노예로 부리는 수단의 현실을 명도가 높은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 음식을 못 먹는 건 이미 일상이고, 염소를 잃어버렸다는 이유로도 살해돼 우물가에 버려진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현실은 참담하다. 라파엘레 브루네티, 마르코 레오파르디 공동연출의 <헤어 인디아>는 신자유주의 질서 아래 형성된 국가별, 계급별 착취구조를 머리카락을 통해 보여준다. 인도에서 머리카락은 아름다움의 상징이자 신성한 대상이다. 하지만 이 머리카락은 사원에 바쳐진 뒤 ‘그레이트 렝스’란 이름의 붙임용 머리카락 회사에서 상품으로 만들어진다. 그러고는 선진국에서 돈에 팔려나간다. 세계화의 흐름 안에서 한 나라의 종교 혹은 문화가 얼마나 하찮게 돈으로 소비되는지를 절묘하게 포착한다.
영화제는 6월5일 오후 7시 청계광장 소라탑 앞에서 김환태 감독, 김현진의 사회로 진행된다. 재즈댄스 무용수 유리의 공연도 마련됐으며 모든 상영은 무료다. 참고로 영화제 후원은 전화 02-313-2407, 이메일 hrfilmfestival@empal.com으로 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