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봉 막쉐는 파리에서 가장 근사한 대형 백화점 중 하나다. 이 백화점의 19세기식 둥근 아치형 천장 아래에선 요즘 1950∼60년대 이탈리아영화에 대한 사진전이 한창이다. 거기서 우린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 혹은 비토리오 가스만의 태평스러운 모습에다 유머까지 겸비한 품위있는 남자들을 만난다. 또 화난 듯 입을 삐죽이 내미는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끝없이 기다란 다리의 실바나 망가노 등 이탈리아 여자들 또한 라틴계 특유의 야성미로 아름다움을 한껏 과시한다.
50~60년대 당시 프랑스 학교 운동장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지나 롤로브리지다의 롤로’(‘롤로’는 풍만한 젖가슴을 가리키는 천진난만한 표현-역자)를 찬미하는 외설(?)스러운 노래를 불렀던 것으로 내 부모님 또한 기억한다. 환상의 배우와 영화인들은 물론이고, 크게 확대해서 플래시를 터뜨리며 찍은 로마의 사진으로 <달콤한 인생>의 전설을 만드는 데 기여한 일련의 사진작가 세대가 꽃을 피운 것 역시 그 무렵이다.
잔뜩 공기를 넣어 부풀린 매트 위에서 소피아 로렌과 절묘한 프렌치 캉캉을 시도 중인 장 폴 벨몽도를 보면서 우린 그 당시 사진이 주는 즉흥성에 한껏 놀란다. 저만치에선 소피아 로렌이 파자마 바람에 실내가운을 걸치고 거실로 튀어나온다. 한편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스포츠카의 몸체에 기대어 서서 호기심 어린 100여명의 관중이 보는 앞에서 태연하게 마스카라를 덧칠하는 중이다. 당시 영화는 실외에서 촬영했고, 지나가는 행인들은 엑스트라를 대신했으며, 풋내기 남자들은 인기 여배우가 지나가면 “우와 예쁘다!”라며 즐거운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면 여배우들은 살며시 웃어주거나 친근감어린 시선으로 답변해주었다. 전쟁을 막 치른 이들로선 그 정도의 포상은 받을 만도 했다. 그러면서 여배우들은 그런 행위들에 쉬이 익숙해졌다.
스파게티와 그 위에 뿌려진 파마산 치즈를 먹으면서 자란 여배우들의 머리칼에선 올리브유향이 흘렀고, 몸에서는 막 구워낸 따근따근한 빵 냄새에 라벤더향 세제 냄새가 물씬 풍겼다. 제대로 깎지 않은 겨드랑이털, 어쩐지 부들부들해 보이는 아랫배,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그녀들의 머리칼에서 오는 믿겨지지도 않는 관능성 안에는 네오리얼리즘의 그 무언가가 흘렀다. 꿈이 현실을 먹으며 자라고, 현실 또한 꿈을 먹으며 자랐다. “영화를 보는 우리가 단순한 관객일 뿐이라는 착각을 일으켰던 작품들이 정작 우리네 삶을 이야기해주었다”고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말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인의 삶 속에 영화가 완전히 동화됐듯, 파파라치들 역시 영화 인생 속에 완전히 동화됐다. <달콤한 인생>에 나오는 전설적인 분수대 장면은 사진작가 피에를루이지가 펠리니 감독에게 1960년에 얘기해줬던 실제 일화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한다. 그 얘기인즉 흥겹게 저녁시간을 보낸 피에를루이지는 자동차를 타고 잠이 든 로마시의 아스팔트 위를 유유히 구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아니타 에크베르그가 탔다. 그녀는 바람에 머리결을 흩날리며 밤의 마지막 숨결을 만끽했다. 한데 갑자기 이 신참내기 여배우가 차를 세우라는 게 아닌가. 피에를루이지는 대신 사진 한장 찍어도 좋다는 약속을 받아내고는 흔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스웨덴 여자들 같은 너그러움을 가진 신참내기 그녀는 신발을 훌렁훌렁 벗어버렸다. 그러더니 따사로운 이탈리아의 새벽 햇살 아래 신선한 트레비분수 속으로 슬그머니 미끄러져 들어갔다.
완전히 폐허가 된 나라 이탈리아에서, 이들 여배우는 국민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상의 행복을 선사해주었다. 비교하자면 요즘은 스튜디오 내 수족관이나 호텔 방에서 만들어진 사진들이 전세계 잡지로 계속 쏟아져 나온다. 극도로 통제되고 천만번을 수정한 뒤 허가된 그런 사진들은 관객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겁쟁이 스타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만 하다.
올여름 내내 실험예술영화 극장에서는 전후의 이탈리아영화 중 몇몇 클래식이 상영될 예정이다. 이런 영화에 심취하는 현상은 쉽게 설명된다. 지난 겨울은 혹독했다. 오는 가을이 그리 만만하리라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요즘 우리네 여배우들은 그 차디찬 실리콘으로 우리에게 아무런 위안도 가져다주지 않으리라. 하지만 롤로브리지다의 진짜배기 롤로는 여전히 우리네 삶에 부드러움을 가져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