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은 석관동에도 있었다. 배우 여운계가 영면했던 그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하루 전날이었던 지난 5월22일, 석관동에 위치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교육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식이 열렸다. 검은색 옷을 입은 학생들이 뒤로 돌았다. 앞을 본 학생은 추도문을 읽었다. “배울 수 있는 권리가 짓밟힌 것을 애도합니다. 지켜주지 못한 내 꿈을 애도합니다. 빛보지 못한 나의 열정을 애도합니다.” 학생들은 문장마다 절을 올렸다. 절을 올리는 학생들은 늘어났다.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비상대책위원회 발족식에 앞서 열린 연극학과 학생들의 퍼포먼스였지만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진짜 장례식이었다.
지난 5월19일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황지우 총장이 사퇴를 선언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종합감사 결과에 대한 일종의 항의였다(705호 포커스 ‘영상원은 왜 사라졌는가’ 참조). 감사 결과 축소 지시를 받은 이론과 중 하나인 영상이론과 학생들은 20일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1인시위를 벌였다. 나머지 학생들은 21일 저녁에 모였다. 비대위를 어떻게 조직하고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 회의했다. 발족식에서 한 학생이 비대위에 물었다. “비대위가 아닌 다른 학생들은 뭘 하면 되나요?” 이날 발족식에는 많은 기자가 오지도 않았고, 구체적인 행동계획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다만 타들어가는 학생들의 속은 훤히 보였다. 학생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한예종을 둘러싼 괴담에 시달렸다. 당시만 해도 학생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 말 그대로 터무니없는 괴소문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총장이 사퇴를 선언하기까지한 지금은 그저 풍문으로만 들을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한예종 해체를 주장해온 문화미래포럼은 바로 다음주에 공청회를 연다고 했다. “다른 학생들은 뭘 하면 되냐”고 물을 만큼 답답한 지경이다.
그런데 이런 학생들에게 인터넷미디어협회의 변희재 정책국장은 학생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했다. 발족식이 열렸던 그날, <빅뉴스>에 올린 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냉철한 제3자의 입장에서 한예종이 어떻게 개혁되어야 하며, 대한민국의 예술정책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따져보십시오. 이에 답을 낼 수 있는 학생들은 설사 한예종 전체가 사라져도 충분히 자기 진로를 개척할 수 있을 겁니다.” 이어 그는 “한예종 부실에 책임을 져야 하는 교수와는 더이상의 대화를 하지 마십시오. 지금 학생들이 느끼고 있는 위기의식을 생산적으로 승화해보는 노력을 하십시오. 위기는 문화예술가가 성장할 수 있는 큰 토양이 됩니다”라고 덧붙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두고 “노 대통령의 장례식에 국민세금을 들이지마”라고 외치기 이전에 이미 한예종의 장례식에 끼친 민폐다. 듣기 좋은 말은 때로 무책임하게 들린다. 더군다나 한예종의 해체를 주장했던 그의 말은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상처를 입히고 있다. 한예종 학생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그의 글에 댓글을 달았다. “속보이는 짓 그만하시고 제발 우리 그냥 진짜 공부하게 해주세요. 우리 진짜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제발 열심히 하는 사람 가만히 냅둬주세요. 부탁이에요.” 내버려둬야 할 때는 내버려두자. 잠든 대통령이든 속이 타는 학생들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