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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말·말
2001-11-29

비디오카페

대여점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 내가 좋아하는 유형과 그렇지 않은 유형은 이렇다. 좋아하는 유형은 우선, 자기가 볼 영화 알아서 보는 타입이다. 고맙게도 이런 유형들은 대개가 말이 별로 없다. 아무리 직업이라 할지라도 하루에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말을 걸어온다고 생각해보라.

반면,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타입은 말이 많은 사람들이다. 물론 고객이 점주에게 물건을 고르기 위해 말을 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진주만> 언제 나와요?”라는 똑같은 질문을 하루에 50명 이상에게 듣는다고 상상해보라. 다른 예로 고객이 많이 하는 질문이 “요즘 뭐가 재미있어요?”라는 추상적인 질문인데, 나는 “어떤 장르로요?” 또는 “최근에 본 영화가 무엇이었죠?”라는 식의 구체적인 질문과 답변이 몇 차례 오고가야 비로소 그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성의없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자기가 볼 영화를 이미 정하고 온다는 사실이다. 또한 뻔히 알면서 확인차 하는 질문들이 나를 피곤하게 한다. 대개의 대여점들은 대여중인 상태일 때 비디오케이스를 거꾸로 꽂아놓는데, 뻔히 다 뒤집혀 있는데도 “ooo 없어요?”, “ooo도 다 나갔어요?” 등의 확인 질문을 한다. 게다가 “뒤에 빼논 거 있으면 내놔요”라는 식의 회유도 서슴지 않는다.

요즘은 개업 이래로 처음 보는, 정말 말 많이 시키는 사람이 한명 있다. 그는 최근에 자기가 극장에 누구와 가서 어떤 영화를 보았는가를 그 영화에 대한 감상평까지 곁들여 장장 10분 이상을 늘어놓는다. 매일 올 때마다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준비해오는 그의 정성은 갸륵하지만, 특히 주말 저녁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줄서서 대여하는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 선 사람들 옆에 서서 “음악을 잊을 수 없어 이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느니, “오랜만에 그 영화를 다시 봐야겠으니 찾아달라”는 등의 주문을 한다.

이주현/ 비디오카페 종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