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개설한 뒤 까맣게 잊고 있었던 펀드가 만기되었다. 계좌 열면서 넣었던 5만원씩 두 계좌, 총 10만원. 환매신청을 하면서 보니, 지난 3년간 내가 10만원을 펀드에 넣어 번 돈이 무려! 무려! 5100원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들이 1천만원대 손실을 보는 동안 1천원대 이익을 보니 기뻐 죽을 지경이다. 그 3년 전 10만원을 제외하고는 투자 비슷한 것도 해본 적이 없지만, 요즘 경제 뉴스는 눈여겨보고 있다. 투자는 안 해도 되지만 월급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가장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은 KBS 인터넷으로 매주 월요일 업데이트되는 <최진기의 생존경제>다. 최진기라는 이름이 귀에 익어 찾아보니, 지난해 8월에 ‘현 정부의 환율정책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었던 강의를 했던 강사다. 입시학원 강사. 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강의를 하니까, 신문 경제면 읽기가 쉽지 않은 성인 귀에도 쏙쏙 들어온다. 그래서 입시학원들의 인터넷 강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경제와 철학 강의를 찾아보니, 그 수준이 내 기억보다 더 높았다. 다 배웠던 내용인데, 사회생활을 10년 하고 사회탐구 과목 개념 정리를 다시 해보니 예전에 밑줄 그을 때와 완전히 다른 것이 보인다. ‘계급론과 계층론’을 가르치면서 신문을 객관적으로 읽는 법까지 가르칠 수 있구나. 철학사를 가르치면서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와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까지 언급될 수 있었네. 이현의 윤리, 최진기의 경제. ‘개념 정리’라는 이름이 붙은 사회탐구 강의를 듣다 보니, 어쩌면, 우리가 알아야 할 지식의 기본은 정말 학교에서 다 배웠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학교의 경우, 지식만 가르치는 건 아니다. 초등학교 때 연극반 선생님 이름을 검색엔진에 넣고 돌려보았던 때 일이다. 내 인생 최고의 선생님이었던 그 선생님은, 지금 다른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소설쓰기와 국악을 가르치고 계셨다. 가야금 명인이 손녀 자랑을 하며 그 선생님 이야기를 거론했다는 기사부터, 아이들의 글을 정식으로 출판하게 되었다는 기사까지. 일간지와 주간지, 인터넷 매체 등 여기저기서 기사화가 될 정도의 맹활약 중이시더라. 초등학교 연극반 공연을 위해 학교 밖 큰 강당을 빌리시고 극단을 하는 선배와 연극배우 지인을 불러 특강을 해주셨던 선생님을 떠올리면, 그렇게 20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셨다면, 화제가 안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겠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존경하는 또 한 선생님. 이제 고인이 되셨지만 대학교 때 프랑스어 회화를 가르치셨던(하지만 수업 내용은 거의 대중문화론이었다) 프랑스인 교수님 이름도 검색기에 넣어보았다. 이번에는 베스트셀러가 된 한국 소설의 영감이 된 자료를 그 교수님이 제공했다는 기사가 뜬다. 회화 수업이 끝나고 당시 번역도 안되어 있던 폴 오스터 소설을 원서로 빌려주시던 선생님이셨으니, 리진에 대한 자료를 신경숙 작가에게 건넸다는 에피소드가 하나 이상할 게 없다. 여러분도 해보시라. 은혜를 잊지 못할, 평생 잊지 못할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 이름을 검색기에 넣고 돌려보시라. 한번 찾아뵈어도 좋을 일이다. 나는 검색해보고 싶은 이름이 두개밖에 없었다. 새삼 깨닫는다. 우리의 삶을 거쳐간 모든 선생이 스승이 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