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파리>로 해외 영화제에 참석할 때였다. 로테르담영화제가 끝나고, 다음 라스팔마스영화제까지 한달이라는 시간이 비었다. 친동생이 마침 파리에서 유학 중이었기에 한달 동안 동생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한달 동안 파리 구경 많이 했겠다고? <심즈>만 했다. 부끄럽지만 그렇다. 그래서 길티 플레저다.
물론 정말 내내 <심즈>만 한 것은 아니다. 처음 며칠은 파리 시내도 구경하고 동생 학교에도 놀러가 친구들도 만나고 했다. 그런데 이거 다녀보니 별거 아니더라! 걷다보면 샹젤리제도 나오고, 개선문도 나오고, 에펠탑도 나온다. 퐁피두, 노트르담, 루브르, 퐁네프 다 나온다. 몽마르트르에도 가봤다. 파리가 서울의 5분의 1인가 6분의 1이라더라. 걸어서 웬만한 구경 다 할 수 있다. 그래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볼 게 많지 않냐고? 난 미술 작품 보는 걸 좋아하지만 압도적인 박물관에서 의무적이고 전투적으로 관람하고 싶진 않았다. 옛날 기차역 위에 지어졌다는 오르세 미술관과 현대미술의 산실 퐁피두센터도 가보고 싶었지만… 그래도 파리 시네마테크는 갔다.
그렇게 며칠 만에 웬만한 건 다 본 파리. 마침 동생의 방학이 시작됐다. 동생은 기다렸다는 듯이 ‘시작해볼까?’ 한다. 우리는 마트에 가서 온갖 군것질거리와 맥주를 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자리를 깔고 등엔 쿠션을, 양쪽엔 과자와 맥주를 세팅한다. 나란히 앉아서 무릎에 노트북을 얹고 더블 클릭! 신나는 음악과 함께 <심즈2>가 시작된다. 오랜만이지만 익숙한 음악, 둘이 화음도 넣으면서 따라 흥얼거린다.
동생과 나는 10년 전부터 <심즈>를 즐겨왔다. 지금의 <심즈2>가 나오기 전 오리지널 <심즈> 시절부터 <심즈> 마니아가 된 것이다. <심즈>는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캐릭터를 하나하나 세심하게 만들고 집을 얻거나(직접 짓고) 직장을 얻어 승진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그 아이가 자라서 또 결혼을 하고…. 정말 디테일하게 인생을 빼다박았다. 집을 짓거나 꾸미는 재미로 하는 사람도 있고, 대리만족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게임을 즐기는 목적도 다양하다. 나는 후자에 해당한다. 나랑 똑같은 이름의 캐릭터를 만들어 좋은 집에 살게 하고 직장에서 점점 승진하는 재미도 보고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붙인 캐릭터와 결혼해서 애도 낳고 그 애가 자라서 또 결혼하고 손자도 보고….
요즘은 바쁘기도 하고, <심즈3>의 발매를 앞두고 왠지 ‘<심즈3>가 나오면 그때 해야지’ 하는 마음에 하지 않고 있는데, <심즈3>가 나오면 연희와 상훈의 가족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래서 동화 속 주인공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해주고 싶다.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유치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한번 해보고 나서 말해!”
김꽃비 <삼거리 극장> <똥파리> 등에 출연했다. 얼굴이 알려질 수 밖에 없는 배우의 숙명과 유명해지는 건 싫다는 딜레마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