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에 초청된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을 보았다.
임순례 감독이 연출하고,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과 여성영화인모임이 제작주체인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님을 비롯, 이 땅에서 감독으로, 제작자로, 촬영기사로, 조명기사 등으로 일하는 여성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담담하게 잡았다.
박남옥 감독이 어떻게 그의 장편 첫 영화 <미망인>을 어렵게 완성하게 되었는지, 여성으로서 수적인 ‘희소성’이 어떻게 현실적 어려움으로 대체되었는지, ‘영화’라는 것이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사로잡고 뒤흔들었는지, 그 여성들은 잘난 체하지 않고, 엄살떨지 않고, 그냥 그렇게 식탁 앞에 앉아 수다떨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모 영화를 제작할 때 일이다. 크랭크인 전 영화의 목표와 위상을 공유함과 동시에 친목도모로 치러지는 워크숍에서 앞에 나가 마이크를 잡은 감독을 비롯한 스탭들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기쁘다, 열심히 하겠다류의 다짐 같은 이야기를 주로 꺼냈다. 그 자리에 나선 조명퍼스트 김은미 기사의 멘트가 퍽 인상적이었다.
“지금의 마음가짐이나 다짐이 이 영화가 크랭크업할 때까지 지속되기를 희망한다. 그때 가서 보자.”
초심이 변하지 않기를, 그저 꾸준한 자세가 최선일 터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녀가 참 미더워보였다. 그녀는 그 말처럼 언제나 현장에서 최선을 다했고, 자상하게 후배조수들을 보살폈다.
한국의 여성감독들은 그런 마음으로, 주류의 한국영화들이 피와 죽음과 폭력을 이야기할 때, 여성이기에 운명적으로 친할 수밖에 없는 마이너리티의 삶을, 자신 바로 옆의 사람들을, 그들의 상처와 결핍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성성에 대한 편애인가. 아둔한 자기 합리화인가. 그건 모르겠다. 정재은 감독과 임순례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앞으로 나올 이정향 감독이나 박찬옥 감독의 새 영화들의 면면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꼭 편애나 자기 합리화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든다.
‘여류’, ‘여성’의 토를 달고 주목하는 매스컴의 구색맞추기나 소수의 마이너리티를 희귀동물처럼 주목해주는 구시대의 어법이 아닌, 여성들의, 여성영화인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현명하고 주의깊게’ 바라봐주는 시선이 함께하는 사회를 희망한다.
돌아보면, ‘여성’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그닥 변한 것 같지 않다. 변하고 있는 건 여성의 생각이나 자세일 뿐. 여성일 뿐.
그 다큐멘터리의 마지막은 이렇다.
검은 화면에 박남옥 감독의 목소리가 흐른다.
“영화, 그건 내 삶의 전부”라고.
50년을 의상 일에 바친 이해윤 선생님은 수줍게 이야기하신다.
“후배들이 평생 영화일을 했으면 하죠”라고.
단 한편의 영화를 연출했을 뿐인데도, 50년이란 세월이 돈도 명예도 가져다주지 못했는데도, 그분들은 그렇게 이야기하셨다.
사실 알고보면, 세상은, 영화는 그런 사람들이 변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