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타이슨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에반더 홀리필드와의 경기에서 귀를 물어뜯던 장면이다. 그것도 두번이나. 친구들과 돈을 모아서 수십달러 하는 페이퍼뷰 방송으로 경기를 보다가 귀가 뜯겨 방방 뛰는 홀리필드와 끝까지 눈을 부릅뜨고 홀리필드를 치려던 타이슨이 기억난다. 3회전에서 경기가 끝났다. 망연자실하게 TV를 보면서 “내 돈” 하던 생각이 든다. 그 뒤 종종 타이슨의 이야기가 들려왔는데, 얼굴에 커다란 문신을 한 사진을 보면서 혀를 차던 기억도 있다. 이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그가 제임스 토백이 감독한 다큐멘터리 <타이슨>으로 돌아왔다. 이 작품이 상영 중인 맨해튼 유니온 스퀘어에 위치한 리걸 시네마스 유니온 스퀘어 스타디움14에서 한 관객과 이야기를 나눴다.
-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 = 스테이지 네임이 있는데, 쓰면 안될까? 무대에서 공연할 때 쓰는 이름이거든. 닥터 스팀 위플(Dr. Steam Whipple)이다.
- 금요일 밤에 혼자서 이 영화를 보러온 이유는. = 타이슨이 권투선수를 막 시작했을 때부터 그의 경기를 줄곧 지켜봤다. 굉장한 파이터였지. 모두를 KO패 시키고. 그런데 언제부턴가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지. 그런 얘기를 미디어로만 접했는데, 이 영화를 통해 타이슨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 보고 나니 어떤가. = 완전히 ‘에픽’(서사시)이었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이 보였다. 작품을 보면서 그에게 인간애를 느낄 수 있었다. 그다지 큰 기대를 가지고 찾은 것은 아닌데, 솔직히 놀랐다.
-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면. = 팬이긴 했지만, 타이슨이 권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는 잘 몰랐다. 어릴 적 패싸움을 잘하던 동네 불량배에서 훗날 아버지처럼 따르게 되는 멘토어를 만나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배웠다는 이야기가 무척 감동적이었다.
- 어릴 적에 타이슨의 경기를 많이 봤다고 했는데, 권투 팬이었나. = 그렇지는 않다. 타이슨의 경기를 좋아했을 뿐이다. 다른 선수에게서 느낄 수 없는 무엇인가가 느껴지는 선수였다. 링 위에서 권투하던 타이슨의 모습은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아마도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었던(1997년 6월28일) 경기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영화상에는 타이슨이 이후에도 돈 때문에 형편없는 선수들과도 몇 차례 경기를 했다고 하는데, 그 경기들은 보지 못했다.
- 타이슨이 왜 갑자기 자기 얘기를 하고 싶었을까. =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화려했던 챔피온 시절에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겪으면서, 이제는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된 그를 보면서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 이 작품의 감독인 토백은 타이슨과 20년 된 친구라고 하더라. = 그래서 그렇게 편해 보였나? 무척 자유롭게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나. 여자문제부터 마약중독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친구였기에 그렇게 솔직하게 말했던 것 같다.
- 솔직히 나도 타이슨에 대한 선입관이 없지 않았다. = 타이슨에게 잔인한 동물 같은 페르소나가 있었던 것도, 여자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페르소나는 링에 오르기 위해, 세상과 맞서기 위해 필요했던 것 같다. 이 작품을 통해 타이슨의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가 링에 오르기 전에 남모르게 속으로 떨고 있었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 본인도 무대 공연을 한다고 했는데, 무대에 오르기 전에 그런 두려움을 느끼나. = 때로는 페르소나가 필요할 때가 있다. 원하는 공연을 하려면 말이지. 타이슨처럼 극단적인 페르소나는 아니지만. (웃음)
- 무대 공연이라면 정확히 어떤 공연인가. = 좀 복잡하고, 다양하다. 클래식 기타를 가스펠 교회에서 연주하기도 하고, 브루클린의 여러 록밴드와도 연주하고, 작사·작곡도 한다. 시어터에서도 연주하고, 뮤지컬도 썼고, 카바레 공연과 코미디 공연도 했다.
- 마지막으로 올해 기다리는 영화가 있다면. = <타이슨> 시작 전에 트레일러로 다른 권투 관련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던데, 그다지 관심이 가질 않는다. 원래 영화를 잘 안 보거든. 뉴욕에서 수없이 많은 영화 광고를 하긴 하지만, 별로 광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TV도 잘 안 보고, 잡지도 안 본다. 이 영화처럼 원래 관심이 있었던 사람에 대한 작품을 친구들이 추천해주면 보는 정도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