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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업>을 떨리는 마음으로 기대함

내가 20대와 30대 초반이었을 때는 픽사 영화를 다른 영화들보다 특별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확실히 잘 만들고 시각적으로 뛰어났지만, 영화평론가이자 팬으로서 여느 영화를 대하듯 대했을 뿐이다. 그런데 내 나이 서른일곱. 이제는 픽사 영화를 예사롭게 대할 수 없다. 아이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네살배기와 18개월짜리 두 아들 녀석이 모두 픽사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어린 녀석은 “아빠”보다 “이바”(이브)라고 말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이 녀석들은 좋은 영화를 알아본다. <치킨 리틀> 같은 후진 영화는 좋아하지 않고 좋은 영화만 보려 한다, 그것도 매일. 어림잡아 생각해봐도 <>는 약 100번, <라따뚜이>와 <월·E>는 60번씩 본 것 같다.

같은 영화를 50번 이상 보면 미쳐버리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매번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이 영화들을 보게 된다. 매일 아침 똑같은 길을 지나는 것처럼 더이상 새로운 무언가가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데도, 여전히 아름답고 기분 좋은 길을 가느냐, 흉하고 황량한 길을 가느냐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다.

그게 바로 내가 픽사의 새 영화 <>의 칸 프리미어 상영을 앞두고 서울에 앉아서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떠는 이유다. 보통 영화라면 두 시간을 보고 그 다음에 영화에 대해 다시 떠올려보거나 이야기하는 등 약간의 시간을 투자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이 새 픽사 영화는 내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다. 그러니 리뷰를 읽는 게 겁이 난다. 이 영화는 반드시 좋아야만 한다.

다행히도 픽사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고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은 분명 멋질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벌써 예고편에 빠져 있다. 좋은 영화에도 그 차이가 있다. <월·E>는 매력있는 영화지만 20번, 30번 보고 나니 이야기상의 논리적인 틈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만약 이브가 그처럼 기술적으로 앞서 있다면 왜 이브를 태운 우주선은 20세기의 산물처럼 보이는가? 오토가 ‘리콜로나이즈’ 작전을 수행하지 말도록 명령을 이미 받았다면 왜 애초에 선장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 왜 우주선의 기상예보는 중앙통제되고 이미 25만5642일이 지나도록 업데이트되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안내되는가? 이런 것들을 잘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서는 그 무엇도 말이 되지 않는다(아이가 없는 독자들은 이쯤에서 나를 비웃겠지만, 비웃지 말지어다. 언젠가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예전에는 좋은 영화란 서너번을 보고도 여전히 관객을 사로잡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감히 전문가의 입장에서 말하건대, 한 영화를 50번 보고도, 예를 들어 <라따뚜이>처럼 여전히 그 영화가 더 좋아질 수도 있다. <>은 과연 자기의 명성만큼 좋을는지? 내게 이것은 단순히 영화 한편 보는 티켓값 이상의 문제다.

이것은 영화감독이 평론가에게 하는 절체절명의 복수일 수 있다. <라따뚜이>의 안톤 에고가 말했듯이 (그냥 기억에 의존해서 인용해도 될 듯하다) “평론가의 일이란 어떤 면에서 참으로 쉽다. 별 책임감 없이 우리의 판단에, 자기 일과 자기 자신을 바치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지위를 누린다”. 나 또한 영화평론을 쓰면서 그런 권력을 누린다는 환상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정말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은 영화감독들이다. 영화평론가에게 복수하고 싶다면 그들의 아이들이 보고 싶어 못 견디는 영화를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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