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고어의 향연이 칸 경쟁부문을 함락했다. 올해 칸영화제의 최고 화제작인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 크라이스트>가 지난 4월17일 첫 기사시사를 가졌다. 시사 전부터 악마적인 호러영화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라스 폰 트리에의 신작은 영화는 어린 아들을 사고로 잃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내(샬롯 갱스부르)와 남편(윌렘 데포)이 고립된 산장으로 요양을 간다는 이야기다. 산장에 도착하자마자 일은 벌어진다.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의 역사를 연구하던 갱스부르는 여자들이 원래 악마같은 존재라고 믿기 시작하다가 완전히 미쳐버린다. 그녀는 공구함에 들어있는 온갖 날카롭고 둔중한 물건들로 자신과 남편을 고문한다. 윌렘 데포의 성기는 완전히 돌로 짓이겨져 발기한 채 피를 쏟아낸다. 갱스부르가 자신의 클리토리스를 가위로 잘라내버리는 장면이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등장하자 극장은 난장판이 됐다. 신음소리와 야유와 웃음. 그리고 자리를 신경질적으로 박차고 나가는 소음이 마구 뒤엉켰다. 다음날 기자회견은 전쟁이었다. 한 기자가 일어나서 울분에 가득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왜 이런 영화를 만든것인가". 라스 폰 트리에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기자는 다시 마이크를 뺏었다. "이런 영화를 칸에 가져왔을 땐 제대로 된 설명을 해라". 트리에는 어떤 질문에 어떤 것도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나는 세계 최고의 감독이다. 다른 감독들은 모두 과대평과되었다"며 실없는 농담만 계속했다. 기사 시사가 끝난 다음날에는 혹평이 쏟아졌다. <레 인록>은 "모든 것이 그냥 거대한 농담일지도 모른다"고 썼다. <르 피가로>는 "뽕맞은 베르히만이 찍은 것 같다"고 했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고문 포르노"라고 했고, 로저 에버트는 "살아생전 본 가장 절망적인 영화"라고 토로했다. <카이에 뒤 시네마>와 <사이트 앤 사운드>만이 별점 세개로 트리에의 괴작을 지원사격하고 있다. 물론 라스 폰 트리에가 다리오 아르젠토나 고문 포르노 장르의 영향력에만 기대어 영화를 만든건 아니다. <안티 크라이스트>에서 라스 폰 트리에는 여성 잔혹사에 대한 많은 상징들을 곳곳에 심어두고 있다. 하지만 기념비적이라 할 만큼 극심한 고어장면들이 트리에의 의도를 완전히 표백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 수입사 마스 엔터테인먼트는 "국내 심의를 통과하지 않으면 계약을 취소하는 조건"으로 <안티 크라이스트>를 수입했다. 다만 국내 수입된 버전은 칸영화제 버전보다 훨씬 강도가 약한 ‘클린 버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