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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의 아저씨의 맛] 남의 남편, 섹시한 남편

<내조의 여왕>의 남편들

내가 이렇게 얄팍한 팬심인 줄 몰랐다. “아~ 준표”, “우리 범이”를 외치던 게 불과 한달 전이었다. 기력 쇠한 내가 이제 더이상 무슨 닥본사질을 하랴 싶었는데 월요일 밤 10시 광고에서 귀염 떠는 준표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꺼져! 지호철호상현이를 내놓으란 말이다!!!”

<내조의 여왕>에 빠졌다. ‘꽃남’들이 아무리 섹시해도 도무지 길티하게 느껴져(기저귀 갈아주던 조카랑 동갑이다) 감정이입할 수 없었던 쾌락의 상상에 풍덩 빠져 배영한다. 어쩌면 누구 하나 고르기 힘들 만큼 셋 다 이렇게 멋진 거니.

아저씨가 이렇게 섹시하게, 그것도 떼로 등장했던 드라마가 있었나. 생각이 안 난다. 밤샘근무로 멍 때리는 두뇌활동 때문인가, 옆자리 동료에게 물어보니 불륜의 사회학에 대한 <한겨레21> 표지기사까지 등장했던 <애인>의 유동근을 말한다. 웬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냐.

곰곰이 생각해보니 성적 매력이 사라지지 않은 아저씨가 드라마에서 주로 해왔던 역할은 불륜남이었다. ‘리복’광고의 섹시남으로 화려하게 등장해 또래 배우들이 바득바득 청년이고자 안간힘 쓸 때 일찌감치 진로를 선회해, 전도양양한 시이오 등 비교적 잘난 아저씨 역을 무주지 선점해온 이종원만 봐도 그렇다. 다양한 불륜남 역을 수행한 끝에 인간미 넘치고 두 여자을 구원하는 불륜남(<에덴의 동쪽>)이라는 전인미답의 경지까지 개척하지 않았는가.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아무리 TV 소재가 막장이 되고, 참신하고 유별나고 4차원인 캐릭터들이 등장해도 끝내 수용할 수 없었던 건 바로 소속 있는 남자가 관능적으로 보이는 게 아니었나 싶다. 아내 있는 남자가 상품성을 가지는 순간 위협에 빠지는 건 여럿이다. 아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유부남으로) 보내버리면서 꽃돌이로 남고자 하는 남자 배우들에게도 이 정글이 반가울 리 없다. 물론 배후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이 세상을 일부일처제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만들고자 하는 무리들이 있다. 그리하여 시청자가 유부남 캐릭터를 보면서 음탕한 생각에 빠지기 전에 이 매력남들을 ‘쳐죽일 놈’으로 만들어놓는 것이다.

그래서 <내조의 여왕>은 비범한 드라마다. 지호철호상현이를 보라. 스펙으로만 보자면 지호철호는 애까지 있는 그냥 유부남 아저씨지만 캐릭터로나 몸으로 보나(하악~) 연애 걸고 싶은 인물들이다. ‘구준표 10년 뒤’라고 불리는 윤상현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해 무엇하리오(<내조의 여왕>도 불륜 드라마 아닌가? 묻는다면 너 바보다라고 대답하련다).

방송사에 고하느니 불륜 드라마를 더이상 만들지 말길 바란다. 이제 불륜은 섹시한 아저씨들과 내가 직접 할테니(아, 물론 상상 속에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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