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 바르다의 영화는 사운드의 강약과 리듬에 따라 춤추듯 흘러가는 이미지다. 혹은 관찰자(그녀는 ‘창조주’라는 신격화된 감독의 위치를 거부한다)로서의 천진한 호기심이 빚어내는 섬세한 결이다. 혹은 알고 싶고 보고 싶고 보존하고 싶은 것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아녜스 바르다의 환희가 그대로 관객에게 전이되는 체험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영화를 만드는 것, 이미지와 사운드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바르다 단편 섹션1’ 중 <DU COQ A L’ANE>) 이제까지 주로 여성영화제를 통해 드문드문 소개되었던 아녜스 바르다의 작품들을 일별할 수 있는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이 서울 홍대 앞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에서 5월12일부터 31일까지 열린다(www.igong.org).
이번에 상영되는 장편 5편은 바르다의 영화인생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들이다. 바르다의 데뷔작이자 영화평론가 조르주 사둘이 ‘누벨바그의 진정한 첫 번째 영화’라고 격찬했던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4)은 바르다 자신이 윌리엄 포크너의 <하얀 야자수>를 읽고 느낀 혼란스러움을 영상화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완성되었다. 영화 속 시간을 새롭게 사고하며 삶의 우연성과 활력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5시부터 7시까지의 끌레오>(1961)는 ‘파리에서 만들어진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다. <행복>(1964)은 사랑과 일부일처제와 안정적인 결혼제도 모두를 냉정하게 쏘아붙인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아니라 ‘나’의 그것으로 귀속될 수밖에 없다. 개봉 당시 여성관객은 <행복>을 보고 분개하거나 혼란스러워했다.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1976)는 ‘바르다 단편 섹션2’에 포함된 <reponse de femmes>의 확장판과도 같다. 낙태, 피임, 섹스, 임신의 욕망처럼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폭로하는 교과서적 작품이다. 제42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방랑자>(1985)는 영화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여성 캐릭터 모나를 등장시킨다. 모나는 미스터리다. 그녀는 무엇과도 누구와도 소통하기를 거부한다. 상냥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다. 여성에게 기대되는 그 어떤 역할이나 이미지와도 걸맞지 않은 그녀는 동정없는 세상에서 파멸해간다. 2005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시네바르다포토>는 바르다의 포토그래퍼적이고 컬렉터적인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 다큐에세이다.
‘바르다 단편 섹션1’은 미술과 사진, 건축에 대한 바르다의 애정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이중에서도 <ducote la cote>는 필견작이다. 칸 해변의 한여름을 채취하는 이 단편은 미감과 유머, 멜랑콜리가 충만한 아름다운 걸작이다. <DU COQ A L’ANE>는 바르다의 단편 세계를 총정리한다. 손과 음성, 작은 오브제들만으로 이뤄지는 화면의 기민한 활력은 절로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가난을 숭배하지도, 돈을 숭배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욕망에서 실현으로 움직일 수 있는 빠른 가능성이다.” 참고로 단편 섹션을 모두 보려는 관객이라면 섹션2를 먼저 보는 편이 낫다. 섹션1의 <DU COQ A L’ANE>가 단편들 대부분을 아우르는 바르다의 직접적인 코멘트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바르다 단편 섹션2’에선 바르다의 정치적 관심사와 문학, 음악 취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국 소살리토 지역에서 히피의 삶을 유지하는 바르다의 괴짜 삼촌을 찾아가는 여정 <oncle yanco>, 초현실주의에 맞닿아 있는 바르다의 이미지 구성과 남루한 삶의 리얼리티가 충돌하고 공존하는 <L’OPERA-MOUFFE>, 시인 루이 아라공과 그의 아내 엘사의 지극한 러브스토리 <엘사, 장미>, 고양이 애호가임에 틀림없는 바르다의 깜찍한 유머가 빛을 발하는 <날개달린 사자>를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