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의 <마더>가 최초 공개됐다. 제62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마더>가 현지시각으로 지난 5월16일 오후 2시 칸의 드뷔시 극장에서 기자시사를 가졌다. <마더>는 한국에도 이미 알려진 것 처럼 살인죄로 누명을 쓴 아들의 결백을 증명하려는 엄마의 투쟁을 다루는 작품이다. 그러나 짧은 시놉시스와 이미 공개된 몇몇 이미지만으로 <마더>를 예측하는 건 무리다. 봉준호는 <마더>라는 제목으로부터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영화를 만들어냈다. 한약재상을 하는 엄마(김혜자)는 ‘바보’라는 말만 들으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약간 덜떨어진 아들 도준(원빈)을 홀로 키우며 살아간다. 시작부터 모자의 관계가 정상적이 아니라는 사실은 금새 눈치챌 수 있다. 엄마의 사랑은 도에 지나칠 정도로 맹목적이다. 어느날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도준은 한 고등학교 여학생의 뒤를 쫓아가며 약간 음란한 말을 걸다가 여학생이 던진 돌에 맞을 뻔 한다. 다음날 여고생은 옥상에 걸린 변사체로 발견된다. 사건현장에서는 도준이 직접 자신의 이름을 썼던 골프공이 발견된다. 엄마는 도준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경찰과 변호사에게 사정하지만 누구도 도와줄 생각이 없자 직접 수사에 나선다. 그렇다면 <마더>는 모자를 주인공으로 한 또다른 <살인의 추억>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마더>의 전반부는 전형적인 추리 영화를 연상시킨다. 엄마는 수많은 주변 인물들을 취재하며 조금씩 진실로 다가선다. 하지만 중반이 지나면서 봉준호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꽤 놀라운 반전이 하나 제시되고, 거기서부터 영화는 폭력적인 인간 심리극으로 전환된다. <마더>는 모성의 위대함을 설법하는 감동적인 소품이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극단적인 모성애와 맹목적인 믿음의 허영에 관한 로마네스크적인 비극이다. 봉준호 영화에서 종종 보여졌던(그리고 박찬욱 영화에서는 좀 더 자주 보여졌던) 시각적인 쇼크효과는 전례없이 강렬하다. 봉준호 특유의 유머 역시 최소한으로 제한되어 있고, 빈자리를 채우는 건 관객의 신경을 긁는듯한 예민함이다. 이는 영화가 김혜자라는 배우를 이용하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다. <마더>의 김혜자는 ‘한국의 어머니상’이라 불리우던 여배우의 온건한 이미지의 차용이 아니다. 김혜자라는 배우가 종종 보여주던 극도로 예민하고 선병질적인 중년 여성의 뉘앙스를 봉준호는 고통스러울만큼 극대화한다. 스타일의 양식화가 두드러지는 것도 주목할 만 하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오랫동안 관객의 기억에 남을만한 이미지들이 쏟아져내린다. 봉준호는 이야기와 대사보다는 이미지를 통해 관객에게 말을 건다. 스릴러로서의 밀도는 확실히 <살인의 추억>보다 덜하다. 그러나 비주얼리스트로서의 감각으로 따지자면 봉준호 경력의 최상위에 올려놓아야 할게다. 아직 <마더>의 본격적인 외신 리뷰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일찍 리뷰를 공개한 두 영국 매체의 평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봉준호는 TV 스타 김혜자의 압도적인 연기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오페라같은 멜로드라마를 통해 페드로 알모도바르로 방향을 돌렸다. 기품있는 구성과 무드로 넘치는 촬영으로 가득하다"고 호평했다. 반면 <토탈필름>은 "<살인의 추억>이 느긋한 속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재미있고 종종 서스펜스가 넘쳤다면, <마더>는 관객의 주의를 끄는 힘은 빈약하고 마지막 반전은 교묘한 속임수다. 칸영화제 시사가 끝나자 박수나 야유도 없이 관객들은 조용하게 자리를 빠져나갔다"고 썼다. 국내 개봉시에도 <마더>는 박찬욱의 <박쥐>에 이어 격정적인 찬반양론을 쏟아낼 것이 틀림없다. 봉준호는 <괴물>과 <설국열차>의 사이에서 잠시 쉬어가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닌 듯 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영화적인 세계를 좀 더 다른 방향으로 틀어보겠다는 야심을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마더>가 봉준호의 가장 상업적인 영화는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마더>가 봉준호의 가장 강렬한 영화라고 말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