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끊는 사람은 늘어가는데 술 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술 때문에 망신당하는 사람은 늘어갈망정.

술 마시다 가족이나 친구를 때리거나, 회사 사람을 때리거나 추행하거나, 상습적으로 낯선 이와 싸우거나, 병원에 가거나, 술 마시다 죽은 채 발견되거나… 여튼 술 마시고 사고치는 걸로는 안 본 유형이 없는데, 신기하게도 그런 사람들 태반이 여간해서는 최후의 순간까지 술을 끊지 못한다. 신기한 건, 술 마시고 사고치는 사람을 비난할라치면 그 주변에서 일차적으로 피해를 입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술 안 마실 땐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야. 술이 나쁘지 사람이 나쁘니” 하고 옹호하는 일을 왕왕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체 술이 뭐가 나쁜가? 사고칠 거 알고도 술 마시는 사람이 나쁘지.

여튼, 비가 온다고 마시고, 밤이라고 마시고, 밥 먹는다고 마시고, 친구 만났다고 마시고, 원수 만났다고 마시고, 혼자라고 마시고, 어제 마셨다고 마시고, 어제 안 마셨다고 마시고, 피곤하다고 마시고, 안 피곤하다고 마시는… 자칭 애주가, 타칭 알코올중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IQ 185에 태어난 지 9개월일 때를 기억했다는 나카지마 라모의 <오늘밤 모든 바에서>가 그 책이다. 술과 마약에 절어 살다가 “나는 계단에서 떨어져 죽을 것”이라는 생전의 말처럼 계단에서 굴러 생을 마감한 그의 이 책은 그야말로 알코올중독 자체에 대한 이야기다.

서른다섯에 알코올성 간염으로 병원에 입원한 주인공 고지마. 그는 병원에서 자신보다 더한 알코올중독자들을 만나고 자신의 중독 증상이 몸에 끼치는 영향을 소름끼치게, 예민하게 인지한다.

소설이나 만화에 나오는 알코올중독은 술이 떨어져 괴로워 몸부림치면서, “술, 술을 줘”라고 절규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배가 고플 때 그때까지 잊고 있던 술의 존재가 떠올랐다. 혹은 이상하게 불안하고 초조할 때는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이런 때에 위스키를 한잔 마시면….’

바로 지우려 해도 그 생각은 일상의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었다. 참을 수 없이 마시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막연하게 여기서 한잔 마시면, 하는 것이다. 내 안에 그런 회로가 생긴 것 같다. 불안, 고통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마신다’는 회로에 접속된다. 정신병리학적으로 말하면 보상계 회로가 확립되어버린 것이다. -<오늘밤 모든 바에서>, 나카지마 라모

당장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사람들이 아련하게 눈앞에 떠오른다. 하지만 이 소설이 무슨 알코올중독자를 위한 바이블도 아니거니와, 본문에서 “약물중독은 물론, 일중독까지 포함해서 인간의 ‘의존’이란 것의 본질을 모르면 알코올중독을 알 수 없습니다. ‘의존’은 인간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바. 자칭 애주가, 타칭 알코올중독 초기 환자를 주변에 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당신이 상대하려는 사람은 이런 이유로, 이런 생각으로 술을 마십니다. 금주 권유 작업은 그저 삽질의 다른 이름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