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 만화방에서 <2001밤이야기>라는 만화를 빼들었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 기대를 뛰어넘는 역작이었다. 과학적 고증없이 오락의 흥취 하나로만 질주하는 당대 소년지풍의 만화가 아니었다. 책은 아서 C. 클라크의 오마주로 시작되더니 무려 4세기에 걸친 인간의 우주 진출을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냈다. 멋진 하드 SF였다. 장르 특유의 경이감을 극대화한 훌륭한 문학이었다. 그걸 만화방에서 훔치지 않은 걸 천추의 한으로 생각한 지 어언 15여년. 호시노 유키노부의 <2001밤이야기>가 <2001 SPACE FANTASIA(2001야화)>라는 제대로 된 이름을 달고 총 3권으로 출간됐다(알고보니 90년대 읽었던 책은 해적판이었다). 사실 <2001 SPACE FANTASIA(2001야화)>가 온전하게 창의적인 건 아니다. 호시노 유키노부는 서구 SF문학의 걸작 단편들에서 꽤 많은 영감을 얻었다. 중요한 건 제대로 된 영감을 제대로 표현했다는 거다. 특히 마지막권에 나오는 ‘시간을 항해하는 새’들의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가슴이 벌벌 떨릴 만큼 감동적이다. 우주개발의 시대는 냉전과 함께 막을 내렸다. 하드 SF의 전성기도 끝났다. <2001 SPACE FANTASIA(2001야화)>는 공허한 마음을 달랜다. 여전히 우주를 꿈꾸는 하드코어 SF팬들의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