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병사의 난징학살사건의 경험을 영화로 만든 루추안의 <난징! 난징!>이 올해 칸영화제 아시아영화 라인업에서 빠졌다. 그러나 칸의 영화마켓에서는 두번 상영될 예정이고 베니스영화제에서는 상영되지 않을 것이다. 베니스는 보통 월드 프리미어를 요구하는데 이 영화는 이미 중국에서 개봉하여 극장 개봉 5일 만에 1천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그의 스승인 장원 감독의 <귀신이 온다>처럼 일본 병사가 주요 인물인 이 영화는 역사적 진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흑백으로 촬영됐다. 중국 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민족주의적 관점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며 일본 감독이 만든 중국영화 같다고까지 비난했다. 그러나 칸영화제 위원회가 보기에 이 영화는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인 영화였을 것이다.
이 영화가 칸 마켓에서 상영된다는 것은 중국의 자막 번역가들이 집단파업을 선언했다는 4월 중반 인터넷에 떠돌던 소문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영어자막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막 번역가들의 이런 보이콧은 너무 적은 액수의 번역비를 받는데다가 그것도 영화 회사들이 이를 지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2009년 중국의 또 다른 블록버스터영화인 닝하오 감독의 <크레이지 레이서>는 개봉하고서 1500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그 영화의 대화 부분은 영어로 번역됐고 4월 유럽의 한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됐을 때 영어자막이 스크린에 같이 투사됐다. 그런데도 영화 판매사는 프린트에 자막을 입히는 데 드는 200달러의 비용이 아까워서 자막이 들어간 프린트를 만들지 않았고 칸의 마켓에서 상영되지 않을 것이다.
루추안의 영화처럼 1천만달러가 드는 영화를 만들면서 전문 번역가에게 주는 몇 백달러를 아낀다니 우습게 들리겠지만, 아시아영화계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국 판매사는 영어자막을 만드는 데 꽤 신경을 쓰지만, 막판에 수준이 떨어지는 비전문 자막 번역가를 쓰는 일이 자주 있다.
수십년간 해외 마켓에 영화를 수출해온 일본영화계는 자막을 만드는 솜씨를 훨씬 존중한다. 영화 한편의 자막료가 최소 2천달러다. 그러나 좀더 경력이 있는 번역가는 대개 한편에 4천달러를 받는다. 유명 감독이 요구하는 유명 자막가는 훨씬 더 받는다. 영어자막을 만드는 데 영화 한편에 수백달러가 아니라 수천달러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영화자막 만들기가 전문적인 직업이 됨을 의미한다.
일본 영화산업처럼 자막을 전문적인 기술로 존중하는 것에도 물론 단점은 있다. 또한 모든 일본영화에 영어자막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올해 일본영화의 제작편수가 400편에서 300편으로 감소된다면 한편당 4천달러라고 해도 이 모든 영화에 자막을 만들 경우 1년에 120만달러가 든다. 그 정도의 총액은 올가을 일본 국회에서 발표될, 수출 지향적인 해외 콘텐츠 개발 펀드의 전체 예산을 놓고 보면 극히 적은 액수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는 자막 비용을 선별적으로 지원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이 일본처럼 오스카상을 거머쥐는 영광을 원한다면 뛰어난 수준의 자막을 만들기 위한 시장 가격을 올려야 한다. 영진위가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현상소를 통해 높은 수준의 35mm영화 현상을 위해 요구되는 적정한 시장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듯이. 아니면 적은 보수를 받는 한국영화 자막가들이 중국 동료들이 취한 행동에서 한수 배워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