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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의 아저씨의 맛] 나쁜 남자가 좋아

기타노 다케시

701호를 축하하는 의미(왜 701호냐고요? 700호에서 밀렸습니다)로 특별 칼럼을 준비했다. 이름하여 ‘나의 아저씨 길티 플레저의 맛’. 요즘 트렌드인 컨버전스를 세계 최초로 글쓰기에 도입한 최첨단 칼럼이라 하겠다.

내 길티 플레저 중에서도 가장 음습한 건 바로 기타노 다케시다. 거장 반열에 오른 작가가 어떻게 길티 플레저냐고? 그의 영화가 아니라, 늙고 추하고 심술맞은 기타노에게 매혹되면, 그것도 성적으로 매혹되면 길티 플레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가 기타노에게 빠진 건 십여년 전 어느 대학 축제 때 열린 일본영화제에서였다. 아무 생각없이 <그 남자 흉포하다>를 보다가 ‘헉!’했다. <3-4*10월> 보면서 ‘웬 늙은 돌아이’ 했던 아저씨가 가슴속으로 격하게 들어온 것이다. 그가 영화 초반 해맑고 사악한 소년을 묵사발 만들 때 전율했던 나는, 마지막 복수를 위해 걸어오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얼굴이 벌게져 괜한 손부채질만 해댔다. 남들 긴장할 때 그래, 나, 느꼈다.

‘그 취향 흉포하다’ 말할 분 계시겠지만 따지고 보면 내 은밀한 연모는 흔해 빠진 ‘나쁜 남자’ 신드롬의 하드코어 버전이다. 여자들이, 주로 어린 여자들이 귀신 씻나락 까먹는 말투로 말하는 ‘나쁜 남자’ 취향이 설득력 전혀 없는 것만은 아니다. 여기서 나쁜 남자란 여자에게 쌍욕하고 주먹질하고 돈 뜯고 강간하는 진짜 나쁜 남자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진짜 나쁜 것들에게 나쁜 짓을 하는 나쁜 남자인 것이다.

폭력과 회의주의, 유머가 뒤엉킨, 그리고 이런 것들이 압도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기타노의 세계는 ‘나쁜 남자’의 가장 노회한 버전이다. 최근 나온 <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에는 이런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예를 들면 “일본은 미국이라는 야쿠자 오야붕에게 관리비를 지불하고 있는 상점과 같은 나라다”(냉소), “중국과 한국이 역사교과서 같은 문제로 항의를 해오면 외교를 끊어버립니다”(폭력),“(총리가 되면) 의원 수준을 높이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 문에 매일 다른 수학문제를 붙여 풀지 못하면 문이 열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유머) 등 그 카리스마에 빨려들어가면서도 진짜 속내는 도통 알 수가 없어 불안하기 때문에 더 강하게 압도되는 ‘나쁜 남자’의 정수들이 총망라돼 있다.

하지만 기타노에 대한 에로스적 강박에서 벗어난 계기가 있다. 그가 진짜 나쁜 남자로 출연한 <피와 뼈>를 보고나서였다. 기타노 따위, 환갑 넘고 못생긴 할머니들하고나 즐기라고 해! 선언하며 노예에서 벗어나 밝은 햇빛 아래 살아오다가 칼럼을 쓰기 위해 <그 남자 흉포하다>를 다시 본 순간 그만, 나도 모르게 그만… 주인님! 저를 다시 받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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