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퇴임 뒤에는 녹색운동을 할 거다.” 이명박 대통령은 4월30일, 한 환경대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또한 “녹색성장이라는 문제는 세계적인 과제이고 인류 공통의 과제”라면서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 이틀 전인 4월28일에는 제6회 서울환경영화제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영화제쪽은 저탄소 녹색성장의 주무부처인 환경부에 유감을 표시했다.
5월21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제6회 서울환경영화제가 혹독한 다이어트를 준비 중이다. 전 지구적인 경제불황 때문만은 아니다. 총예산 가운데 환경부에서 받기로 한 2억원의 지원금이 행사를 약 20일 앞둔 현재까지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예산심의를 통과한 이 돈을 환경부가 왜 지급하지 않는지, 어디에 쓸 건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환경영화제쪽도 지원금 교부에 대한 환경부의 정확한 공식입장을 듣지 못하고 있다.
3월20일경 “지원 여부 불투명” 통보
제6회 서울환경영화제의 전체 예산은 약 9억5천만원이다. 기업후원이 약 4억5천만원이고 기념품과 티켓 판매, 체험전 참여비 등으로 약 5천만원이 충당된다. 여기에 더해 서울시가 2억5천만원을, 환경부가 2억원을 지원한다. 환경부의 지원금이 전체 예산의 약 21%에 이르는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열린 제5회 환경영화제에 처음으로 2억원의 지원금을 교부했다. 당시 환경부가 작성한 지원계획안에는 “환경영화를 통해 환경의 소중함을 체험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더불어 사는 미래의 환경을 가꾸기 위한 실천적 대안과 방법을 모색하는 공간 제공”, “서울환경영화제는 다큐멘터리, 극영화 및 애니메이션 등 장르나 형식의 제한없이 환경문제 전반에 대한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상설전과 특정 주제와 함께 해마다 새롭게 꾸며지는 특별전으로 구성”한다는 지원목적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이때는 행사 한달 전이었던 2008년 4월14일에 2억원 전체를 교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환경부는 2009년 영화제에도 지원을 약속했고, 영화제쪽은 지난해 7월 1차 사업기획안을 제출했다. 5개월 뒤, 국회에서 환경영화제에 대한 예산 지원이 통과됐고 올해 2월 2차 사업기획안이 제출됐으며 이어 3월에는 확정예산에 따른 교부금 신청서가 제출됐다. 하지만 지난해와는 달리 환경부는 “기다려보라”는 답변만 내놓았다. 지원금을 받아야 할 시점인 3월20일경에는 “지원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통보가 전달됐다. 환경영화제쪽은 공문을 통해 지원 여부와 지원이 안될 경우 사유를 물었다. 당시 환경부 담당자의 답변은 “시민단체 지원에 대해 총리실에서 전면 재검토 중이라 지원이 안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참가하지도 않은 촛불시위 탓?
환경부가 국회 심의를 통과한 예산을 집행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나돈다. 일단 영화제 특성상 환경영화제가 다루는 영화들이 먹을거리, 물, 에너지 등의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와 대운하 건설로 갈등을 빚는 정부 입장에서는 달갑게 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최근 촛불시위에 참가한 시민단체를 길들이려는 정부의 움직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미 보조금 지원을 조건으로 내건 정부의 무리수는 곳곳에서 발견됐다. 4월19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여성부와 노동부는 보조금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시민단체들에 불법시위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확인서를 요구했다.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을 맡고 있는 행정안전부의 경우는 아예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사회단체를 원칙적으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으며, 기획재정부는 2009년도 예산 및 기금 운용계획 집행지침에 불법 시위에 적극 참가한 단체 등에 보조금 지원을 제한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납득이 가능한 이유는 아니다.
4월28일 열린 서울환경영화제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는 “시민단체에 지원을 축소하는 것과 환경영화제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 어떤 관계가 있냐”고 영화제쪽에 물었다. 영화제쪽 답변은 “우리도 궁금한 부분이다”였다. 시민단체 활동과 환경영화제 행사가 별개인데다, 사실상 환경영화제를 주최하는 환경재단은 촛불시위에 참가했던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영화제쪽도 왜 환경부의 태도가 바뀌었는지를 궁금해하는 것이다.
환경영화제쪽이 28일에 있었던 대정부 질의를 위해 몇몇 국회의원들에게 발송한 질의자료에 따르면, 환경부의 지원 여부를 물었을 때 당시 환경부 담당자는 “환경재단이 촛불시위 단체를 지원하고, 대운하를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말을 흘렸다. 이에 대해 환경영화제쪽은 “환경재단은 촛불시위가 있기 전부터 지난 6년간 시민단체 상근자들의 장학금을 지원해온 것이고, 촛불시위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까지 했는데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치졸한 보복행위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환경영화제의 이병희 사무국장은 “일단 환경재단은 촛불시위에 참가한 건 아니기 때문에 확정서를 받은 적이 없다”며 “만일 나중이라도 확인서를 쓰라고 하면 아예 쓰지 않고 지원금도 받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일단 규모 축소해 치르기로
2억원의 예산이 줄어든 환경영화제는 올해의 행사를 영화 상영 중심으로 치를 계획이다. 이병희 사무국장은 “환경영화제는 자녀들과 함께 온 부모관객이 체험전을 관람하는 게 주요 행사인데, 이번에는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영작 섭외 및 작품, 프린트 수급과 자막 번역, 장비 대여 등은 예정대로 진행하지만 사전개막행사와 메인카탈로그 제작이 취소됐고 대부분의 워크숍은 영화 상영 뒤 상영관 내에서 진행한다. 외부행사에 참여할 업체들에는 대금 지급 기한을 연장하는 것으로 협의를 하는 중이다.
“자원봉사자들도 이미 일정에 맞춰서 영역을 나누고 업무를 분배했다. 선발확정 공고까지 다 나온 상황인데, 전시나 행사가 줄었기 때문에 행사지기로 활동하는 봉사자들에게는 미안하게 됐다. 행사쪽 봉사자들을 살려서 관객심사단으로 배정하는 것을 고려 중이다.” 환경영화제 기자회견이 열린 뒤에도 환경부는 아직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영화제는 규모를 축소해 치러진다 해도 사안이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국회에서 승인이 난 예산인 만큼 환경부는 왜 집행해야 할 예산을 집행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