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검 청사에 들어설 때 나는 친구들이랑 이날 개봉한 영화 <박쥐>를 보고 있었다. 흠. 영화는 ‘강도 높은 불륜영화’라는 게 나의 결론이다. 왜 높냐. 사제/뱀파이어라는 설정에 준해 죄책감/욕망이 남다르니까. 우리는 마구 떠들면서 ‘돼지 인플루엔자’가 축산 농가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는 것처럼 삼겹살을 먹었다. 정작 여기서 나는 길티하다. 한낮에 삽겹살을 구워 먹는 건, 대량 생산된 가축을 먹는 건, 영화 속 상현(송강호)의 말대로 “식성이나 생활 리듬 같은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굉장히 정치적인 함의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멕시코에서 창궐한 신종 바이러스 이름에 ‘돼지’를 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돼지와의 직접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은데다 설사 관련성이 있다 해도 돼지 스스로 이런 사육 환경을 자처한 건 아니잖아. 듣는 돼지 기분 나쁘지. 하지만 ‘대량 생산된 가축들의 복수’라는 주제만큼 인간의 길티함과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은 없다.
전세계가 벌벌 떠는 이번 ‘변종 인플루엔자’는 물론 최근 10년 이내에 창궐한 조류 인플루엔자나 사스 같은 인수공통 전염병은 모두 동물에서 기원한 바이러스가 원인이다. 공장식 축산업이 주범이다. 인간의 입맛에 맞는 품종을 근친번식으로 대량 생산하니 유전적 다양성이 낮아지고 돌연변이도 등장해, 특정 질병에 취약해지거나 새로운 질병을 일으킨다. 밀집 사육장에서 전파는 시간문제다. 이번 것도 비록 치료제가 개발돼 있다지만 돼지·조류·인체 바이러스 정보를 모두 지니고 있어 전염도는 물론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인간 대 인간 감염에 따른 사망자도 나왔고, 추정·의심 환자에 대해 ‘적발’, ‘추적’이라는 표현이 쓰인다. 멕시코에서는 ‘나 면역자예요’라고 쓰인 팻말을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이쯤 되면 거의 “타인은 나의 지옥”(샤르트르)이다. 부디 인간들이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의미있는 존재로 타인을…” 아니, 돼지를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 유시민 아저씨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두고 “졸렬한 정치 보복”이라고 이를 갈았던데, ‘돼지들의 복수’라는 말이 왜 떠오르지? 역시 전염성이 강한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