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메이드 영화 같은 편집과 진행이 흥미로운 이응준의 신작 소설이다. 남북이 통일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으로 이응준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30대라면 깜짝 놀랄 만큼 어둡고 날선 책이다.
2016년 4월. 통일된 한국은 잔뜩 곪아 있다. 갑작스러운 통일만큼이나 깜짝 놀랄 많은 문제들이 통일된 한국을 짓누르고 있어서다. 조선노동당 최고위층의 고운 딸은 창녀가 되었고 조선인민군의 자랑스러운 최정예 전사는 깡패가 되었다. 공화국 군대의 무기 회수와 그 관리가 허술했던 탓에 이제 한국에서 총기사고는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북한 인민의 주민등록화에 실패, 적없는 ‘대포 인간’이 양산된다. 게다가 한국은 엄청난 통일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전망없는 3등 국가로 망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근미래라고는 하지만 처절한 지옥도 같은 상황 속, 인민군 출신들이 결정한 폭력 조직 내부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주인공 리강은 그 배후를 조사하다가 음모가 있음을 알게 된다. 미스터리, 스릴러, 누아르의 요소를 두루 갖춘 이야기다. 약간의 유머도. 물론 블랙 유머지만.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 책의 상상력은 대체역사 소설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있을 수도 있지만 철저한 상상의 산물인 이 시공간의 질서는 폭력에 의존하고 있고, 그 폭력의 질서는 누아르 장르 중에 레이먼드 챈들러(<빅 슬립> <기나긴 이별>)의 고전적 우아함보다는 제임스 엘로이(<LA 컨피덴셜> <블랙 달리아>)의 피칠갑의 처절함을 더 닮아 있다.
“이남과 이북의 동상이몽이 바라는 바는 베트남의 호치민이 아니야. 위대한 인간을 기다리는 게 아니거든. 소심한 신을 기다리는 거거든.” 통일이라는 가장 있을 법하고, 동시에 있을 법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한 이야기인데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급박하게 변한 상황에 타락하거나 추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 한국 상황을 연상시키기도 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기억에 남는 부분은 블랙 유머와 풍자. 그러니까 이건 통일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