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국내 최대 갤러리 비문을 운영하는 배태진(엄정화)은 원하는 건 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소유자다. 조선시대 궁중화원 안견의 <벽안도>를 일본에서 입수한 배태진은 ‘신의 손’이라 불리는 복원기술자 이강준(김래원)을 불러들인다. 해외에서 유학한 뒤 복원가로 이름을 날리던 이강준은 배태진이 주도한 밀반입 사건에 휘말려 곤욕을 치른 적 있는 인물이다. 복원에 성공할 경우 경매시장에서 400억원을 호가할 것이라는 <벽안도>. 갤러리 비문은 전설의 그림 <벽안도>를 차지하기 위한 패거리들의 암투장으로 변한다.
‘당신이 본 모든 것은 가짜다.’ <인사동 스캔들>의 보도자료 첫장은 미술계의 대표적인 위작 논란을 언급한다. 작가 스스로 절필을 선언한 1991년 천경자의 <미인도>, 아직도 법정 공방 중인 2007년 박수근의 <빨래터>, 경매가 취소된 2008년 <석존일경삼존삼세불입상> 등 진짜냐 가짜냐를 두고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인사동 스캔들’이다. <인사동 스캔들>의 흥미는 현실의 이슈들을 극의 안료로 삼았다는 데 있다. “안평대군이 왕위에 오르기를 바랐다는 마음을 담은 탓에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는 <벽안도>를 둘러싼 인물들의 싸움은 지극히 개연성을 갖고 있다. 야욕을 위해 정·재계 인사들을 끌어들이고, 대규모 언론플레이를 벌여 사업을 확장하는 배태진의 수완에서 신OO 사건이 연상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붓이 칼이 되고, 혀가 칼이 되고, 돈이 칼이 되는” 인사동 뒷골목의 복제와 밀매에 관한 생생한 묘사에 제작진이 공을 들였음은 쉽게 알 수 있다.
문제는 캐릭터를 적소에 배치해 플롯을 꾸렸느냐 하는 점이다. <인사동 스캔들>은 쉬지 않고 인물들을 토해낸다. ‘떼쟁이’들의 은어가 어지럽게 쏟아지는 가운데 <벽안도>를 복제하려는 이들과, 이를 빼돌리려는 무리들과, 이들의 범죄를 막아내려는 경찰의 동선으로 이야기는 어지럽게 전개된다. 박희곤 감독은 “캐릭터가 뒤섞여 보이거나 혹은 누구 밑의 누구라는 개념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캐릭터 각각의 욕망을 온전히 드러내지도 못한 것 같다. <벽안도>를 소유한 배태진과 <벽안도>를 복원하는 이강준의 심리에 대한 고려 또한 인색하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에 비하면, ‘선수’들을 등장시켜 범죄의 세계를 흥미롭게 펼쳐 보이는 기술은 부족하다. 캐릭터를 전시용 볼거리로만 활용했다는 점에서 아쉽긴 하나, 그래도 다양한 굴곡의 배우들을 흘깃거리는 재미는 있다. “벽안도가 원래 내 것이었잖아”라고 ‘구라’치는 권 마담 역의 임하룡, 이강준을 도와 사기극에 가담하는 상복 역의 마동석, ‘이미테이션의 세계에도 레베루가 있다’는 호진사 사장 역의 고창석 등은 주어진 몫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