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기사를 보고 낄낄댔다. 최근 <한겨레21> 기획기사 “지지리 궁상이 혁명이다”에서 황자혜 전문위원이 인터뷰한 일본인 마쓰모토 하지메의 ‘투쟁기’를 읽다가였다. <가난뱅이의 역습>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그의 책에는 ‘필살기’가 여럿 소개된다. 대학 시절 ‘호세 대학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하고 결행한 식당 밥값 20엔 인상 반대 데모가 ‘찬란한 투쟁’의 서막이었다는데. 이런 식이다. 추울 때에는 난로를 피우고 꽁치를 굽거나 ‘롯폰기힐스를 불바다로!’라는 무시무시한 전단지를 뿌리고는 역 앞에서 찌개를 끓인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사람들한테 “기무라 다쿠야(일본 최고 인기 배우)가 온대요”라고 말한다. 그는 노동절을 기념해 한국에도 온단다. “누가 불러준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뿌리깊은 일본의 아나키즘이 이렇게 자체발광 진화하는 게 참 보기 좋다. 마쓰모토에 따르면 일본도 산업예비군이란 명목으로 희망 고문을 하는 나라지만, 뭐랄까 대안적 삶의 여지는 우리보다 훨씬 많은 거 같다. 도쿄 중심의 일극주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어서 숨통이 트이는 걸까. 일본은 ‘전국 네트워크’를 갖춘 한국 시민운동을 부러워한다지만, 무늬만 전국인 서울 네트워크에는 그들의 기기묘묘한 풀뿌리 운동이 오히려 놀랍다. 한국 한센인들이나 강제위안부 재판을 돕고 한국 징용인 집성촌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탠 이들은 대부분 일본의 ‘지역’단체와 운동가들이다.
2002년 대선 때 주변의 아나키스트들에게까지 특정 후보 찍기를 독려했던 나는(이들은 절대 투표 안 하는 족속이다. 국가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도덕적 파산’ 선언에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일단 나에게 들볶인 아나키스트들에게 조금 미안했고, 전직 대통령들의 비자금과 간혹 출몰하는 괴자금에 견줘 ‘구찌’가 참 작구나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노 전 대통령도 진짜 노후가 불안했나보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대통령조차 ‘대안적 삶’을 꿈꿀 수 없는 나라, 우리나라 팍팍한 나라. 로자 룩셈부르크 언니 말처럼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기도 하지만, 재미도 없고 무엇보다 돈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