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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 더 비기닝> 엔터프라이즈호의 귀환
김도훈 2009-04-21

11번째 극장판 <스타트렉: 더 비기닝>을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우주개척의 역사

<스타트렉: 더 비기닝>이 5월7일 개봉한다. 떠오르는 질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왜 제작사는 유효기간이 지난 <스타트렉> 극장판을 21세기에 되살리려는 걸까. 할리우드의 새로운 제왕 J. J. 에이브럼스는 왜 신선한 프로젝트들을 고사하고 고색창연한 항해에 뛰어든 것일까. 아직 영화는 공개되지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스타트렉>이라는 우주개척 역사의 예습과 복습이다.

J.J 에이브럼스는 왜, 그리고 어떻게 <스타트렉>을 개척했나

그러니까 대체 왜 <스타트렉>인가. 지금 할리우드와 미드의 세계에서 가장 똘똘한 J. J. 에이브럼스는 왜 <스타트렉> 따위를 리메이크하겠다고 나섰나. 파라마운트가 오래된 TV시리즈와 큰 흥행작이 없었던 극장판 시리즈를 21세기에 1억5천만달러나 들여서 재부팅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대체 뭔가. 23세기 우주 탐사선 직원들의 낙천적인 모험담이 뭐 그리 대단하기에 다들 난리법석인가. 한국 관객이 <스타트렉>을 둘러싼 엄청난 서구의 하이프를 모조리 이해하기란 조금 힘들다. 기껏해야 두 번째 TV시리즈인 <스타트렉: 더 넥스트 제너레이션>이 90년대 MBC를 통해 딱 1시즌 정도 방영되었을 따름이다. 좀더 나이든 팬이라면 66년 오리지널 TV시리즈의 캐스트들이 출연한 몇편의 극장판을 80년대 극장에서 본 게 전부일 게 틀림없다.

지난 몇년간 쓴맛… 젊고 신선한 피 수혈

그러나 일단 태평양 건너편으로 넘어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지금이라도 구글에 트레키(Trekkie)라는 단어를 넣고 검색해보시라. <스타트렉> 코스튬을 입은 수많은 미국인들의 사진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86쪽에 DJUNA가 쓴 ‘괴상한 패션과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스타트렉> 폐인들, 트레키는 누구인가’를 참조하시길). 트레키를 다룬 다큐멘터리 <트레키즈>(Trekkies)를 한번 되감아보자. 법정에 배심원으로 참석하면서 <스타트렉> 코스튬을 입고 나온 여자, 아예 자기 병원을 엔터프라이즈호 관제실처럼 만들어놓은 치과 의사. 말하자면 끝도 없다. <스타트렉> 오타쿠들은 세상의 어떤 오타쿠들보다도 무서운 골수분자들이다. 오타쿠의 인구와 영향력으로 따지자면 <스타워즈> 정도는 훌쩍 넘어선다. 미국의 첫 번째 시험용 우주왕복선의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하는가? 바로 ‘엔터프라이즈’였다. 밀레니엄 팔콘도 아니고 디스커버리도 아니었다(<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디스커버리는 1984년 발사된 세 번째 우주왕복선의 이름이 되긴 한다). <스타트렉>은 미국 대중문화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아이콘이다.

문제는 <스타트렉> 팬덤의 막강한 영향력에도 지난 몇년간의 극장판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극장판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했던 건 젊고 신선한 피의 수혈이다. 파라마운트 제작진은 도박을 원했다. 그리고 그들이 꺼내든 패는 놀랍게도 <클로버필드>와 <미션 임파서블3>와 TV시리즈 <로스트>의 창조자인 J. J. 에이브럼스였다. 사실 J. J. 에이브럼스는 트레키가 아니었다. 하지만 파라마운트의 감독직 제의를 덜컥 수락했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새롭게 개척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결과가 성공적으로 나온다면 그건 감독이 소재 자체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배트맨 비긴즈>의 촬영을 준비하던 크리스토퍼 놀란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진짜로 흥분상태였다. 비즈니스적인 결정이 아니라 배트맨에 대한 개인적 사랑의 실천이었다. 제작사가 <스타트렉>을 제의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트레키는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좋습니다. 할게요. 제가 사랑할 수 있는 버전의 <스타트렉>은 어떤 영화가 될까요?”

커크 선장과 스포크의 젊은 날로 돌아가다

물론 J. J. 에이브럼스는 지난 10편의 <스타트렉> 극장판에 이어지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1966년 시리즈의 창조자인 진 로덴베리가 잉태한 세계에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동시에 <스타트렉>의 유구하고 복잡한 역사를 잘 모르는 일반 관객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블록버스터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시작으로 돌아가는 것. J. J. 에이브럼스는 오리지널 시리즈와 6편의 극장용 영화를 이끌었던 커크 선장과 스포크의 젊은 날로 돌아간다. 커크는 젊은 시절의 제임스 딘을 똑 빼닮은 반항적인 아이오와 시골 출신 소년이다. 스포크는 인간과의 혼혈이라는 이유로 고향인 발칸 행성에서 쫓겨난 소년이다. 아직 성인으로의 자아도 채 찾지 못한 두 남자는 완전히 서로의 반대말이다. 커크는 감정으로 움직이고 스포크는 이성으로 움직인다. 아카데미 훈련생이 된 두 사람은 끊임없이 싸우고 또 싸우지만 목적은 하나다. USS 엔터프라이즈호의 승무원이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두 소년은 (오랜 트레키들에게는 너무나도 그리운 이름인) 의료담당 맥코이, 엔지니어 스콧, 통신담당 우후라와 항해사 술루를 만난다. 그리고 소년들은 남자가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커크 선장과 스포크가 된다.

시나리오작가인 로베르토 오시와 알렉스 커츠만은 지금껏 <스타트렉>에서 보여지지 않은 두 가지 이야기를 시도할 수 있다는 걸 반겼다. 하나는 시리즈에서 단 한번도 보여지지 않은 커크와 스포크의 젊은 시절. 다른 하나는 엔터프라이즈호의 역사적인 첫 번째 미션이었다. 알렉스 커츠먼은 말한다. “젊은 시절의 스포크를 되새기는 건 아주 매력적인 일이다. 스포크는 발칸과 인간 사이에서 어떤 세계가 자신에게 더 적합한지를 고민하고 있다. 젊은 시절의 커크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헤매며 제임스 딘처럼 거칠게 성장한다.” 그러나 거칠고 젊은 시절로의 귀환이 꼭 시리즈의 배반일 필요는 없었다. 제작진에게는 새로운 업데이트만큼이나 오리지널 시리즈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 또한 중요했다. 다시 말하자면 새로운 <스타트렉>은 지금의 SF 장르에서 멸종되어버린 오리지널 시리즈의 모토인 ‘낙천주의’의 산물이어야만 했다.

제작자인 데이먼 린델로프는 현대 SF영화들의 디스토피아적인 면모를 <스타트렉>에까지 끌어들이고 싶진 않았다고 밝힌다. “요즘 우리가 보는 미래에 대한 영화들은 대부분 음산하고 디스토피아적이다. 하지만 초창기 <스타트렉> 시리즈는 아주 낙관적이고 쿨했다. 우리가 믿고 싶은 방식으로 미래를 펼쳐 보였다. 바로 우리가 바라는 미래 말이다.” J. J. 에이브럼스 역시 인간의 선천적인 선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 오리지널 시리즈의 낙관론을 사랑했다. “나는 <스타트렉>이 우주를 정복하려는 게 아니라 우주를 탐사하고 발견하고, 또 이해하려는 이야기라는게 좋았다.” 완전히 시작으로 돌아오지만 시리즈의 근본적인 성격을 버리지는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스타트렉: 더 비기닝>의 관건이었던 셈이다.

좀더 심플한 코스튬으로 미래지향적 분위기 높여

그러나 또 하나의 과제가 남아 있었다. 그건 거대 자본의 블록버스터에 합당한 시각적 업데이트였다. 브라이언 싱어처럼 형광색 타이즈를 불태우고 검은 가죽 타이츠로 주인공들의 몸을 감싸는 파격을 시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존재하는 시리즈의 프리퀄을 만들면서 급진적인 스타일 변혁을 시도하다가는 조지 루카스처럼 흉측한 꼴이 나고 말 테니까 말이다(오리지널 시리즈보다 훨씬 오래전 역사를 다루면서 더욱 과격한 테크놀로지들을 성찬처럼 펼쳤던 <스타워즈> 에피소드 1, 2, 3이 얼마나 이질적이고 괴상했던가를 한번 떠올려보시라).

J. J. 에이브럼스는 오래된 시리즈의 유산을 엄격하게 반영하는 동시에 현대의 젊은 관객에게도 충분히 미래적으로 보일 수 있는 비주얼을 원했다. <스타트렉: 더 비기닝>의 근사한 타협을 가장 함축해서 보여주는 건 코스튬이다. <블레이드 러너>의 코스튬 디자인을 맡았던 디자이너 마이클 캐플란은 <스타트렉> 시리즈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었다. J. J. 에이브럼스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영화의 디자인팀이 좀더 신선하게 새로운 <스타트렉>에 접근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캐플란은 <스타트렉> 시리즈에 대한 책들을 읽고 지나간 시리즈를 보며 자신만의 상상력을 덧입혔다. “아주 직관적인 프로세스였다. 영원불멸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서도 좀더 심플함을 부여하는 것.”

우주적 낙관주의를 되살리는 시도

J. J. 에이브럼스의 마지막 과제는 여전히 고상하게 움직이던 지난 극장판들과 달리 거대 자본이 아낌없이 투여된 블록버스터로서 <스타트렉: 더 비기닝>을 재창조하는 것이었다. 그의 모토는 단 하나였다. 리얼리티. 또 리얼리티. “상상력을 뛰어넘는 모험들을 최대한 실재처럼 느껴지도록 하고 싶었다. 감정적으로나, 동시에 물리적으로도 말이다. 그래서 그린스크린과 CG에 모든 걸 의존하고 싶진 않았다. 최대한 모든 세트를 직접 만들길 원했다. ILM의 특수효과팀도 에이브럼스의 비전에 동의했다. 그들은 거대한 세트를 남부 캘리포니아에 지었고, 그 속에서 자유롭게 연기한 배우들의 모습을 우주의 스펙터클과 마술처럼 이어붙였다.

J. J. 에이브럼스가 그린스크린을 반기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스타트렉>이 기본적으로 ‘캐릭터’ 중심의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진짜 중요한 건 우주선이 아니다. 거기 타고 있는 사람들이다. <스타트렉>의 액션과 모험이 우리의 심장을 박동시키는 이유는, 우리 모두 거기 탑승한 인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엔터프라이즈호의 일원이 되길 원한다. 그들과 함께 은하를 항해하길 원한다. 그런 감정을 살려내는 것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획득해야 할 목표였다.”

J. J. 에이브럼스의 <스타트렉: 더 비기닝>은 오래전에 잊혀진 우주적 낙관주의를 음험한 시대에 되살리려는 시도다. 40여년 전 TV 브라운관 속의 엔터프라이즈 대원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인류는 현명하게 진화할 것이다. 인종 차별은 사라질 것이고, 지구인과 외계인은 결국 손을 잡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순진하지만 아름다운 휴머니즘은 우주로 뻗어나갈 것이다.

<스타트렉: 더 비기닝>은 압도적으로 발전된 영화적 테크놀로지와 오락영화의 공식을 통해 오래된 믿음을 다시 전하려 한다. 그런데 잠깐. 여기서 우리는 여전히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생각해보라. J. J. 에이브럼스가 누군가. 이 재능있는 남자는 음험하고도 천재적인 떡밥의 제왕이다. 분명 J. J. 에이브럼스는 보통 관객과 트레키들의 뺨을 동시에 후려칠 재간을 숨겨놓고 있을 게다. 우주, 최후의 개척지(Space, the final frontier)는 J. J. 에이브럼스의 새로운 개척지다. 이거야말로 정말 신나는 일 아닌가.

“난 TV시리즈와 J. J의 광팬”

<스타트렉: 더 비기닝>의 악당 네로, 에릭 바나

에릭 바나가 분한 악당 네로.

의문을 품을 만하다. <스타트렉: 더 비기닝>에 에릭 바나가 출연했다던데 대체 무슨 역할을 맡았단 말인가. 트레일러를 일찌감치 감상하고도 바나를 찾지 못한 이라면 그를 굳건한 전사 이미지 안에 가둔 선입견부터 깨야 할 듯싶다. 3월16일 오전 9시45분, 로뮬란 종족의 일원이자 이번 영화의 가장 큰 악당 네로 역을 맡은 에릭 바나와 짧은 전화 인터뷰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 고향에 머물고 있다는 이 성실한 호주 출신 배우는, 분침이 50분을 채 가리키기 전 서울로 전화를 걸어왔다.

-J. J. 에이브럼스는 2월25일 한국을 내한했을 당시 당신이 <스타트렉>의 대단한 팬이라고 하던데, 이 영화에 출연한 이유 중 하나인가. =그렇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스타트렉> TV시리즈에 열광했고, 거기 나오는 캐릭터들도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스타트렉: 더 비기닝>에 반드시 출연하고 싶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나는 에이브럼스의 대단한 팬이다. 그의 안목은 그야말로 뛰어나지 않은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서 말이다. 물론, 내가 맡은 캐릭터인 미로와 <스타트렉>이라는 원전에 대한 J. J의 해석 역시 신선해서 좋았다. J. J는 머리가 좋은 연출가다.

-네로는 로뮬란 종족의 일원이자 이번 영화의 가장 큰 악당이다. 캐릭터의 어떤 면이 좋았나. =나는 악당 캐릭터를 해보고 싶었다. 엔터프라이즈호에는 무수한 캐릭터들이 탑승하는데 그들은 매우 그럴듯하게 묘사된다. 그런 인물들을 한번쯤 죽여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아닐까 싶더라. (웃음)

-힘들었던 점이라면. =음, 미로를 흥미로우면서도 인간적이고, 이해 가능하며, 이야기할 만하고, 동시에 지독한 악당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게 아니었을까. 네로는 매우 복합적인 인물이다. 내게 맡겨진 재료, 그러니까 시나리오부터 훌륭하긴 했지만.

-분장을 많이 했더라. 트레일러를 보니 못 알아볼 정도던데. =한번 완성하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2시간 정도였나.

-2시간이라고? =분장하는 데 3시간, 분장을 지우는 데 2시간쯤 걸린 것 같다.

-<스타트렉> 오리지널 TV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아쉽게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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