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는 여자가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남자친구가 자기 자동차한테 하는 거 1/10만큼만 잘해줬어도 헤어지지 않았을 거라고요. 대답을 해줄 수가 있어야죠. 저는 자동차에 별 관심이 없는 남자라 달리는 배기통을 물고 빨듯이 애무하는 남자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거든요. =흠. 뭐라고 해야 할까요. 남자니까?
-에이. 그건 너무 무성의한 대답이잖아요. 제가 보기에 남자들의 자동차 사랑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킬 만큼 거대하다니까요. 이를테면 여자친구의 친구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기억력이 별로인 남자들도 고속도로에서 살짝 스치고 지나간 자동차 이름과 배기량 등등을 한번에 알아맞히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건 기억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려깊음의 문제겠지. 여자친구의 절친 이름도 기억 못하는 남자들 말이야.
-그건 그래요. 아주 정곡을 찌르시네요. 그렇다면 왜 남자들이 자동차에 미치는지도 대답 좀 해주세요. =그런 질문에 정답이 있을 리가 만무하잖아. 남자들이 자동차에 왜 미치느냐를 알고 싶다면 역사책을 한번 되돌려봐. 자동차가 나오기 전에 남자들이 뭘 타고 다녔니?
-흐으음… 구루마… 요? =말이잖아 말.
-아, 그렇습니다. 말. 황야를 헐레벌떡 훌떡훌떡 달리는 말. =중세나 한국의 경우라면 조선시대를 떠올려보라고. 그 시절 남자들이 얼마나 준마(駿馬)를 좋아했었냔 말야. 김유신이 술집으로 향하는 자신의 애마를 칼로 베는 순간을 상상해보라고. 얼마나 가슴 아프니. 그건 급발진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치게 만든 페라리를 해머로 내리치는 것과 똑같은 고통이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비유가 이상한걸요. 김유신이야 자기 잘못을 애꿎은 말한테 화풀이한 바보잖아요.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야 말하자면. 하여튼 남자들은 자동차를 좋아하고, 좋은 자동차를 가진 남자한테 여자가 엮이게 마련이야. 남자들이 원하는 건 어찌보면 다 뻔한 거라고. 내가 미셸 로드리게즈처럼 화끈한 여자를 꼬인 계기가 뭐겠어. 내가 현다이나 중고 포드를 몰았다면 그녀가 내 애인이 됐을 것 같아?
-엥. 결론이 왜 그렇게 급진전하는 거죠? 일단 현다이가 아니라 현대예요. 요즘은 예전만큼 품질이 나쁘지도 않아요. 그리고 꼭 좋은 자동차를 가져야만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라고요. 미셸 로드리게즈가 당신 품성에 반했을 수도 있잖아.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여하튼 제가 아는 많은 멋진 여자들은 남친을 조수석에 앉히고 직접 자기 차를 운전할 만큼 독립적이고 능력도 있다고요! 자동차가 여자를 꼬이기 위한 남자들의 전유물인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녀들 역시 조수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남친보다 ‘지금 창밖으로 포르셰를 몰고 지나가는 저 남자’를 더 원할걸?
-그… 그건…. =한번 전화해서 이렇게 물어봐. 너 포르셰 타고 달려온 재벌 2세랑 니 남자친구랑 맞바꾸지 않을 자신있어? 이렇게 말야.
-뭔가 말려든 기분이군요. 제가 애초에 물어봤던 질문은 왜 남자들이 자동차를 그토록 사랑하냐는 거였어요. 여자들이 좋은 자동차 가진 남자를 좋아하냐 아니냐가 아니었다고요. 차라리 이렇게 해석하는게 어때요. 남자들은 속도에 집착하잖아요. 유독 남자들이 과격한 스피드광인 이유도 그 때문이고. 그냥 남자들에게는 빠르게 달리는 걸 좋아하는 잠재적 본능…. =잠깐만. 여자들은 빨리 안 달린다는 거야? 지금 당장 고속도로로 나가봐. 무시무시한 속도로 갓길을 역주행하는 전국 수만명의 김 여사들을 봐.
-계속하다간 전국 여성 독자들의 공분을 살까봐 이쯤에서 그만두겠습니다. =괜한 걱정은. 전국 여성 독자들은 너보다 나를 더 사랑해. 나. 나쁜 남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