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2003년 7월4일 두바이 미국대사관, 영국 정보부 MI6 소속 요원 레이 코발(클라이브 오언)은 아름다운 여성 클레어 스텐윅(줄리아 로버츠)을 만난다. 레이는 그녀를 침대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지만 다음날 아침 자신이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클레어는 CIA 요원이었던 것. 그로부터 5년 뒤 생활용품을 만드는 다국적 기업 에퀴크롬에 들어가 산업 스파이로 활동하던 레이는 중요 정보를 빼내기 위해 라이벌 기업 B&R에 침투한 이중 스파이 클레어를 만나게 된다. 이제 두 사람은 B&R이 발표할 엄청난 신제품 정보를 캐내기 위해 첩보전을 펼치기 시작한다.
겉보기에 <더블 스파이>는 영락없는 토니 길로이의 영화다. 다국적 기업을 위해 일하는 스파이들의 치열한 첩보전쟁을 다루는 이 영화는 길로이의 전작을 아우르기 때문이다. 탈냉전시대의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그가 시나리오를 쓴 ‘본 시리즈’를 연상케 하고, 기업의 치부를 건드린다는 면에서는 그의 감독 데뷔작 <마이클 클레이튼>과 닮아 있다는 얘기. 그러나 길로이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스파이가 등장하지만 이들은 총격전이나 자동차 액션 대신 사랑과 배신의 게임을 벌이고, 기업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지만 냉소적이면서도 코믹하게 묘사된다. 결국 길로이는 케이퍼 무비(범죄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영화)와 로맨틱코미디의 혼종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펼친 것이다.
길로이의 ‘실험’은 대체로 성공을 거둔 듯 보인다. 특히 줄리아 로버츠와 클라이브 오언의 호흡은 캐서린 헵번과 캐리 그랜트의 스크루볼 코미디에 비교될 정도로 잘 어우러진다. 무엇보다 <더블 스파이>의 묘미는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 누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이중, 삼중의 배신이 판을 치고, 치밀한 음모와 음흉한 역공작의 계곡이 곳곳에 입을 벌리는 탓에 최종승자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반복되는 플래시백은 이 묘미를 배가시키기 위한 요소다. 영화는 2003년으로 시작해 5년 뒤인 현재 시점으로 점프하지만, 중간중간 2년 전, 18개월 전, 14개월 전으로 돌아가 ‘범죄의 재구성’을 시도한다.
하지만 잦은 플래시백은 때때로 혼란을 만들기도 한다. 애초 이 영화의 연출을 제안받았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시나리오를 읽다 혼란에 빠져 드림웍스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누가 누구를 쫓는가’에 관해 토의했다고 한다(결국 그는 감독직을 포기했다). 이 영화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평론가들도 내러티브 구조의 문제를 지적한다. 앤드루 새리스가 <뉴욕 옵서버>에서 “길로이는 내러티브에 너무 많은 장치를 집어넣음으로써 자기 꾀에 넘어갔다”고 말한 것도 비슷한 차원이다.
물론, <더블 스파이>는 비판보다 칭찬할 게 더 많은 영화다. <마이클 클레이튼>이 그랬듯 이 영화는 1970년대 미국영화에서 볼 수 있던 긴장감과 아이러니를 재현하고, 빠른 편집이나 호화로운 액션 없이도 관객의 눈과 두뇌를 붙잡아낸다. 그럼에도 뭔가 미진한 느낌이 남아 있다면, 그건 토니 길로이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이 영화가 이룬 것보다는 크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