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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예언서의 상징들을 버무려 만든 SF 재난블록버스터 <노잉>
장미 2009-04-15

synopsis 1959년. 교사의 지도 아래 아이들이 자신이 상상한 미래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한 소녀만이 무슨 영문인지 의미 불명의 숫자들을 빼곡히 적어 내린다. 50년 뒤인 2009년. 천체물리학 교수 존 코슬러(니콜라스 케이지)는 아들 케일럽(챈들러 캔터베리)과 단둘이 살아가고 있다. 50주년 개교 행사에 참석한 아들은 과거 타임캡슐이 담긴 메시지 중 하나를 받아오는데, 그게 소녀가 휘갈겨쓴 바로 그 편지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코슬러는 괴이한 숫자들의 조합에서 9·11의 날짜 및 사망자 수와 일치되는 숫자를 발견한다.

시작은 타임캡슐에 담긴 편지 한장이었다. 편지의 숫자들이 9·11은 물론이고 지난 50년 동안 발생한 대재앙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결론에 이른 코슬러는 충격에 휩싸인다. 문제는 그보다 더한 재앙이 인류를 덮치리라는 사실이다. 미래를 바꾸려는 코슬러의 노력에도 예고된 사건들은 고스란히 발생하고 만다. 소녀는 진정한 예언자였다. 소녀의 예언은 어긋남없이 실현되고, 이를 막는 건 불가능하다.

따지고 보면 익숙한 모티브들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대재앙이 닥쳐온다는 아이디어는 무수한 재난영화의 재료였다. 역사가 의도된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거나 지구에 문명의 싹을 뿌린 것이 외계인이라는 식의 설정 역시 완전히 생소한 이야기는 아니다.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신작 <노잉>은, 한마디로 성경은 물론 각종 예언서의 상징들을 버무려 만든 SF 재난블록버스터다. 세상이 우연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고 믿던 비결정론자 코슬러가 결정론자로 바뀌는 과정이 기본 뼈대요, 거기에 결정론과 이웃할 수밖에 없는 종교적, 우주적 색채가 가미됐다. 몇 가지 디테일에선 현대 재난영화와 스릴러의 공식들도 확인할 수 있다. 숫자에 기대 풀어가는 도입부나 묵시록적인 설정에 개개인의 사연을 이어붙이는 세공술이 신선하긴 하지만 발상부터 참신한 영화는 아니라는 뜻이다.

다른 재난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노잉> 역시 휴머니티의 종말을 체감하게 만들 충격적인 장면들을 선사한다. 스펙터클하면서도 극사실적인 묘사는, 스크린 너머까지 예언의 진실성을 설파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물론 암울한 색채에도 <노잉>은 여전히 희망적인 영화다. 아내를 잃은 코슬러가 아들을 위안삼아 생을 이어갔던 것처럼 알렉스 프로야스는 그 모든 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3월 셋쨋주 개봉해 미국에서만 5820만달러를 벌어들였다니 프로야스의 메시지에 동의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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