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 히어로>의 종영이 아쉬웠다. 초창기 참신했던 시사토크 포맷이 바뀌면서 시들해진 관심이 막판에 다시 불지펴졌던 탓이다. 마치 헐크 호건 대 얼티밋 워리어, 또는 S.E.S 대 핑클처럼 ‘세기의 대결’로 인터넷 연예 매체들이 떠들썩하게 홍보했던 최양락 대 이경규전이 여기서 끝나버리다니. 자가용 샀다고 자랑하다가 문 닫으면 문짝 떨어지고 운전대 잡으면 핸들이 빠져 끝내 출발 못하는 ‘고독한 사냥꾼’의 허무 개그를 보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이십여년 선수 생활 가운데 처음 조우했다는 두 중년 개그맨의 복잡미묘섬세유치한 긴장구도를 잠시 관찰하는 건 꽤나 즐거웠다. 그들의 전성기를 ‘코미디에 미친 한철’과 함께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전성기를 살짝 넘어간 중년의 두 개그맨은 사뭇 다른 느낌을 줬다. 한동안 공중파TV의 공백을 겪고 컴백한 최양락이 중학교 때 열렬히 좋아하다가 성인이 돼서 만났을 때 뭔가 어색함이 느껴지는 선생님 같다면 까칠한 이미지로 쉼없이 달려온 이경규는 싫은 소리 툭툭 던져서 열받게 하면서도 그게 익숙해져 그러려니 넘어가게 된 직장 상사 같다. 최양락과 나란히 앉아서 서로 이야기할 때 유독 눈을 맞추지 않는데다 최양락이 터뜨리면 혼자 웃지 않는 이경규를 보노라니 어쩐지 기시감(눈앞에 사무실이 펼쳐지고, 누군가, 누군가의 얼굴이…)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보다보니 세상의 모든 직장 상사들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이경규 같은 상사와 최양락 같은 상사. 이경규 같은 상사는 위에 이야기한 것처럼 한마디로 ‘성질 드러운’ 상사다. 배려, 인격 이런 거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잘못한 부하직원에게 동료 100명 있는 사무실 한가운데서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욕을 퍼부을 수 있는 대담한 성정의 소유자. 부하들에게 주로 ‘개’가 접두사로 붙는 별명으로 은밀하게 불리며 회식 자리에서는 어찌나 혼자 열심히 떠드시는지 술잔을 앞에 두고 잠시 유체이탈을 해도 전혀 티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래도 그들이 끝내 사표를 쓰지 않게 만드는 이유는 뒤끝이 별로 없다는 것이며 진국 TK 캐릭터가 아닌 이상 자신의 주책을 조금은 자각한다, 욕먹는 걸 눈치챈다는 것이다. 김구라의 폭로에 자신의 좀스러운 치부- 주로 돈문제- 를 인정하는 이경규처럼 말이다.
사실 더 문제적인 상사는 바로 최양락과인데 ‘충청도 양반’이라고 할 만한 이런 상사들은 좀처럼 언성을 높이지 않고 채신없이 나서서 설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특징은 섭섭함이 많다는 거. 회식 자리에서 후배들을 짓누르고 스스로 생존하는 이경규과와 달리 후배들이 깔아주는 멍석과 독려를 끊임없이 필요로 하며 노래방에 가서 “난 됐어, 젊은 사람들 노래나 듣지”라는 말을 액면가로 들었다가는 다음 분기 회식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앙금을 새긴다. 이경규과가 노래할 때는 우리끼리 떠들어도 그만이지만 최양락과가 노래할 때는 <칠갑산>을 부르더라도 탬버린을 동원한 댄스, 필수다. 한마디로 뒤끝의 귀감이 될 만한 상사다. 둘 중 어떤 상사와 일하고 싶은가. 어쨋거나 결론은! 상사 모시기는 피곤하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