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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욕실 장면, 차분하게 봐주길”
강병진 사진 오계옥 2009-04-14

<우리집에 왜왔니> 황수아 감독

영화 <우리집에 왜왔니>는 한 남자를 맹목적으로 쫓는 여자의 기구한 사연을 들려준다. 어쩌면 못된 남자 때문에 인생이 어긋난 여자의 이야기는 새로울 게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70년대 한국영화 속의 무수히 많은 여자들도 비슷한 인생을 살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리집에 왜왔니>의 황수아 감독은 그처럼 유구한 이야기에 끝까지 귀를 기울이도록 만들었다. 이승철의 <긴 하루>를 비롯한 뮤직비디오와 CF를 연출했던 그에게 장편 데뷔작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 <우리집에 왜왔니>는 어디서 출발한 영화인가. = 원래 강혜정씨와 <세탁소>란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여러 정황상 준비과정에서 이야기를 바꿔야 했는데, 시나리오를 맡은 김지혜 작가가 주인공의 죽음에서 시작해보자고 했다. 결국 나온 시나리오는 공간이나 캐릭터가 <세탁소>와는 거의 다른 영화가 됐더라.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어보면서 <세탁소>와 연장선상에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부분을 공감했다. 극중 이수강이란 이름도 <세탁소>에서 그대로 가져온 거다.

- 이야기 구조만큼이나 캐릭터에 무게중심이 놓인 영화다. 수강과 병희 중에 특히 수강의 캐릭터에 영화의 전체적인 균형이 몰려 있다. 어떤 여자라고 봤나. = 극중에서 불리듯 ‘미친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사회화 과정이 없었던 아이인데, 그런 특징이 행동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미친년 소리를 듣는 것이다. 주변에서 상담해주거나 제지하는 역할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본질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봤다. 날것의 감정을 지닌 여자를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수강을 더 혼자 있게 만들려고 했다.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마츠코와 비슷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 그 영화를 워낙 좋아한다. <세탁소>를 준비할 때 봤었다. 그 이후로 영화를 준비하면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나오더라. 그 이후로는 보지 않았는데, 잔상들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의상을 피팅할 때도, 사진을 찍었는데 마츠코와 너무 비슷하더라. 그래서 의상을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두 영화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마츠코가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교차로 같은 면이 있다면 수강은 누군가와 함께 손을 잡고 가려는 여자다.

- 수강이 욕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제일 호흡이 긴 장면이다. 배우나 감독 모두 가장 큰 힘을 준 것 같더라. = 사실상 이 영화는 수강을 바라보는 이야기다. 앞부분에서 등장한 과거의 사연들을 통해 캐릭터의 진정성은 다 드러났다고 봤다. 그 장면부터는 이제 관객도 수강에 대한 애정이 생겼을 시점이다. 이때부터는 수강을 차분히 봐줘야 할 것 같았다. 나를 포함해 관객도 함께 견딜 수 있는 장면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미져리>가 직접적으로 인용된다. = 사실 수강의 과거에 대한 팁이다. 이 친구는 상상으로 살아간다. 수강이 혼자 살면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까 생각했을 때, 신작 비디오를 빌려보는 건 아닐 것 같고 폐업점포에서 옛날 비디오테이프를 사서 계속 돌려보지 않았을까 싶었다. 수강의 대사 중에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이야”, “이건 무슨 전개야?” 이런 게 있다. 수강은 자기를 어떤 무대에 놓고 자신 앞에 놓인 사건을 풀어가는 것이다.

- 영화의 유머는 상당 부분이 박희순과 강혜정의 캐릭터가 부딪치는 장면에서 나온다. 특히 박희순의 느릿하고 어벙한 연기는 처음 보는 것 같더라. = 집 내부에 있는 두 사람은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함께 사는 모습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강이 육식동물이라면 병희는 초식동물인 거지. 두 사람에게 전혀 다른 호흡을 주문했다. 특히 희순 선배에게는 어떤 행동과 말이든 반 템포 빠르거나 느리게 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약간 고장난 상태랄까. 그런데 희순 선배 자체에 그런 모습이 있는 것 같다. 너무 잘 어울리더라. (웃음)

-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와서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먼저 데뷔했다. 영화를 준비하는 나름의 과정이었던 건가. = 공부를 하고 와서 독립영화 한편을 만들었다. <데칼코마니>라는 영화인데, 당시 내가 너무 고집이 세서 모든 공정을 정석대로 했다. 심지어 독립영화제 상영 때도 프린트를 걸어야 하는 줄 알았으니까. (웃음) 당연히 사이즈가 너무 커져서 돈이 필요했는데, 마침 CF 연출 제의가 들어왔다. 해보고 싶던 일이었는데, 현실적으로 너무 잘 맞아떨어진 거다. 짧은 기간에 여러 가지를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이라 영화적으로도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

- 차기작으로 준비하는 작품이 있나. = <세탁소>가 너무너무 하고 싶다. <우리집에 왜왔니>의 첫 촬영 전날에도 잠이 안 와서 그때 시나리오를 다시 읽었다. 김지혜 작가나 혜정씨나 거기서 같이 시작했기 때문에 다들 남겨둔 숙제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고, 일단 다른 영화를 구상하고 있다. 아직 말씀드릴 단계는 아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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