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드리야르가 쓰고 유진 리처즈의 사진이 함께 실린 <아메리카>는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이 대표하는 현대성을 읽는 책이다. 뉴욕과 같은 도시를 다루기도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미국의 사막에 대한 담론이다. 사막은 도시들, 관계들, 매체들이 모두 삭제된 비전을 창출하기 때문에 보드리야르의 관심을 끄는데, 그 비전은 기호들과 인간들의 사막화, 즉 문명의 사업들이 좌초하게 되는 정신적 변경을 구성한다. 유럽인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 도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중심이 없는 곳이다. 특히 사막과 사막 사이에 있는 도시들에서 문화의 유일한 요소, 유일한 움직이는 요소는 자동차뿐이다.
사막과 그 끝에 있는 도시에 대한 보드리야르의 통찰은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의 이미지나 이야기와 연결지어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어쩌면 유럽인이 보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수는 그 사막, 혹은 사막과 사막(정신적인 것이든 실제 지표로 존재하는 장소이건)을 연결짓는 길 위에 있는 게 아닐까. 1986년에 쓰인 책이기 때문에 레이건의 미국에서 논의 가능했던 사회적, 정치적 담론을 오늘의 미국에 바로 접목시키기 힘든 대목도 존재하지만, 미국의 미적 특성에 대한 이야기만큼은 변함없이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