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베르토 음악을 듣고 싶다 지수 ★★★★★ 라틴 음악에 대한 정보 지수 ★★★★
2003년 조앙 질베르토의 도쿄 콘서트. <행복>을 마친 그는 품에 안은 기타 위로 몸을 기대듯, 오른손을 입 언저리에 댄 채로 고개를 숙였다. 몇분이 그렇게 지나고도 그가 좀처럼 일어날 기색이 없자, 관객은 박수를 쳤다. 그는 미동도 없이 앉아 있을 뿐이고 사람들의 박수 소리는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그는 그렇게 20분여를 앉아 있었다. 그러다 나이 든 외국인이 맨발로 걸어나와 부드럽게 질베르토의 어깨를 감싸안고 그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환호성. 질베르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빔의 곡 <코르코바도>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질베르토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로 관객의 박수 소리 하나하나에 마음으로 답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런 관객을 찾고 있었다.”
작사가이자 EBS 라디오 <세계음악기행>의 주말 DJ인 박창학이 쓴 <라틴 소울>은 남미 음악에 대한 이것저것을 들려주는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뮤지션 이름 읽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늘어놓다가, 좋아하는 뮤지션에 얽힌 일화들을 회고하다가, 음반을 추천하다가, 노래 가사를 해석해주다가 한다. 음반이 너무 많아 뭐가 뭔지 헷갈리는 피아졸라의 디스코그래피에 얽힌 사연과 베스트 음반 추천은 라틴 음악에 갓 입문한 이에게 큰 도움이 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 모든 게 라틴 음악에 대한 것으로 수렴된다. 그러니 이 책 자체가 라틴의 영혼, 그러니까 ‘라틴 소울’인 셈이다.
많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지만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아무래도 보사노바의 창시자이자 ‘보사노바의 신’으로 불리는 조앙 질베르토에 대한 부분이다. 보사노바를 세계에 알린 <<게츠/질베르토>> 음반을 녹음하던 때 질베르토의 불평불만 때문에 가운데 낀 (무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든지 하는 일화들은 흥미진진하다. 특히 일본 잡지에 실렸던 브라질 상파울루대학 음악사 교수 로렌조 맘미의 글을 중역해 실은 ‘조앙 질베르토와 보사노바의 유토피아적 계획’은 음악과 보사노바, 그리고 질베르토에 대한 아름답고 통찰력있는 비평글이다. “신체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조앙 질베르토는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 이같은 태도에는 대체로 퇴보적이라는 딱지가 붙여지곤 한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미래를 지향하며 유토피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가 노래하는 텔레비전 광고에서조차 나태함이 아닌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감각이 전해진다. 재즈가 힘의 의지라고 한다면 보사노바는 행복의 약속이다.” 보사노바를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도 멈추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의 힘을 느낄 수 있다.